
사람들은 정치 광고를 경계합니다. 후보자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특정 정당의 메시지를 반복하거나, 선거를 앞두고 감정적인 영상을 내보내면 그것이 정치적 설득이라는 것을 압니다. 광고는 광고로 읽힙니다.
그러나 지역 뉴스는 다릅니다.
자기 동네 이름이 붙은 매체, 지역 병원과 학교와 도로와 일자리 이야기를 다루는 기사, 평범한 기자 이름이 붙은 뉴스 형식의 글은 정치 광고보다 덜 의심받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선거 캠페인으로 읽지 않고 뉴스로 읽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 미디어 정치의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정치 메시지가 지역 뉴스의 형식을 입으면, 그것은 광고보다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독자가 방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역 뉴스의 신뢰를 빌리는 정치 콘텐츠
지역 뉴스는 원래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중앙 언론이 보지 못하는 지역 현안을 다루고, 지방정부와 교육청과 지역 기업을 감시하며, 주민이 자신의 삶과 가까운 정보를 얻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지역 뉴스는 오랫동안 쇠퇴해 왔습니다. 광고 수익은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으로 이동했고, 지역 신문은 폐간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기자가 줄고, 지방정부를 감시할 언론도 약해졌습니다.
이 빈틈은 정치 세력에게 기회가 됩니다. 지역 뉴스에 대한 수요는 남아 있지만, 진짜 지역 언론은 약해졌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지역 뉴스처럼 보이는 사이트를 만들고, 지역 현안처럼 포장된 정치 메시지를 배포하면 독자는 그것을 쉽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Courier Newsroom 논란은 바로 이 문제를 보여줍니다.
Courier Newsroom은 지역 뉴스 네트워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 네트워크가 실제로는 진보 성향 정치 메시지를 지역 뉴스 형식으로 전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Courier는 ACRONYM이라는 정치조직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후 Good Information이라는 조직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문제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미국에는 보수 성향 매체도 있고, 진보 성향 매체도 있습니다. 관점이 있는 언론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정치 콘텐츠가 지역 뉴스의 외피를 입고 독자에게 전달될 때입니다.
뉴스인가, 광고인가
정치 광고는 규칙이 있습니다. 누가 돈을 냈는지, 어떤 캠페인인지,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지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독자는 그것을 광고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뉴스 기사 형식을 띠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제목은 지역 현안처럼 보이고, 문체는 보도 기사처럼 보이며, 매체 이름은 지역 언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의 선택과 배열은 특정 정치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광고보다 강합니다. 광고는 설득하려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뉴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 메시지가 뉴스 형식을 입으면 설득의 의도가 가려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언론 윤리의 문제입니다.
정치 메시지는 정치 메시지라고 표시되어야 합니다. 광고는 광고라고 표시되어야 합니다. 캠페인 콘텐츠는 캠페인 콘텐츠라고 표시되어야 합니다. 지역 뉴스라면 자금 출처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뉴스라고 믿고 정치 광고를 소비하게 됩니다.
아스트로터핑: 풀뿌리처럼 보이는 인공 잔디
이런 방식을 설명하는 말이 아스트로터핑입니다.
아스트로터프는 인조잔디를 뜻합니다. 정치에서 아스트로터핑은 풀뿌리 운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당, 기업, 재단, 정치 컨설턴트, 억만장자 후원자가 설계한 여론 조작 방식을 말합니다.
진짜 풀뿌리 운동은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주민, 시민, 지역 단체, 자발적 참여자가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아스트로터핑은 위에서 내려옵니다. 돈과 메시지와 전략은 위에서 정해지고, 겉모습만 지역과 시민의 목소리처럼 꾸며집니다.
Courier Newsroom 논란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역 뉴스처럼 보이는 콘텐츠가 실제로는 전국 단위 정치 전략의 일부라면, 그것은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아스트로터핑의 문제입니다.
독자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치 컨설턴트가 설계한 메시지를 읽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독자는 독립 언론을 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거 전략의 일부를 소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설득은 허용됩니다. 그러나 설득의 출처를 숨기면 조작이 됩니다.
정치 기술과 뉴스의 경계가 흐려지다
Courier Newsroom은 ACRONYM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ACRONYM은 진보 성향의 정치 활동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0년 선거 주기에서 디지털 정치 전략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에서 논란이 된 투표 집계 앱 Shadow와도 연결되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Courier와 Shadow 앱이 같은 사건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정치 기술 생태계 안에서 뉴스, 데이터, 선거운동, 앱, 광고, 디지털 전략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언론사와 선거 캠프가 형식상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정치에서는 이 경계가 흐려집니다.
정치 광고 회사가 뉴스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 기술 조직이 지역 매체처럼 보이는 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콘텐츠 배포와 지역 뉴스 형식이 하나의 선거 전략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보를 보고 판단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정보의 출처와 의도가 흐려지면 시민의 판단도 흐려집니다.
“좋은 정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Courier Newsroom은 이후 Good Information이라는 조직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름이 흥미롭습니다. “좋은 정보”입니다.
현대 정치에서 이런 이름은 자주 등장합니다. News Integrity, Good Information, Trust, Safety, Democracy, Civic Engagement, Disinformation Defense 같은 말들입니다. 모두 선한 언어입니다. 누가 좋은 정보에 반대하겠습니까. 누가 뉴스의 진실성에 반대하겠습니까. 누가 민주주의와 시민참여에 반대하겠습니까.
그러나 선한 이름은 권력을 가릴 수 있습니다.
Good Informati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 실제로 어떤 정보를 좋다고 판단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어떤 정치 성향의 정보는 좋은 정보이고, 어떤 정보는 나쁜 정보인가. 그 조직의 자금은 어디서 오는가. 그 콘텐츠는 뉴스인가, 캠페인인가.
좋은 정보라는 말은 듣기 좋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정보가 “좋다”는 것은 누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은 불편한 정보도 접해야 합니다. 틀린 주장도 반박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사실도 공개되어야 합니다.
선한 이름을 가진 정보기관이 진실의 문지기 역할을 하려 할 때, 이름보다 구조를 보아야 합니다.
억만장자 후원과 지역 뉴스
Courier와 Good Information은 조지 소로스, 리드 호프먼 같은 기술·정치 후원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렌 파월 잡스가 관련 네트워크를 후원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개인이 특정 기사를 직접 지시했다는 식의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 직접 지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입니다.
억만장자 후원자는 언론사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정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역 뉴스 네트워크에 투자하고, 비영리 저널리즘을 후원하고, 뉴스 리터러시 기관을 지원하고, 팩트체크 프로젝트에 돈을 넣고, 정치 기술 조직과 연결된 콘텐츠 네트워크를 지원하면 됩니다.
이것은 언론 소유보다 더 부드러운 방식입니다. 그러나 더 복잡하고, 더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신문사 사주는 눈에 보입니다. 정치 광고는 광고라고 표시됩니다. 그러나 재단이 후원한 지역 뉴스 네트워크는 공익사업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현대 미디어 권력의 특징입니다. 권력은 더 부드러워졌고, 그래서 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허위정보와 싸운다는 사람들의 회색지대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습니다. 허위정보와 싸우겠다는 사람들일수록 정보의 투명성을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좋은 정보”, “뉴스 진실성”, “민주주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회색지대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 메시지를 뉴스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지역 뉴스처럼 보이는 전국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정치 광고인지 기사인지 애매한 콘텐츠를 배포합니다. 자금 출처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충분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상대 진영의 정보를 허위정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이중 기준입니다.
허위정보가 문제라면, 정보의 출처를 흐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투명성이 중요하다면, 뉴스 형식의 정치 콘텐츠도 투명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시민이 정보의 생산자와 후원자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판단하는 제도입니다. 시민이 판단하려면 정보의 내용뿐 아니라 정보의 출처도 알아야 합니다.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라 투명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검열이 아닙니다. 특정 성향의 매체를 금지하거나, 정치적 콘텐츠를 막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정치적 주장은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투명성은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정치 자금이 들어간 콘텐츠라면 명확히 표시해야 합니다. 지역 뉴스 네트워크의 소유 구조와 후원자를 공개해야 합니다. 정치 캠페인과 연결된 조직이 운영하는 매체라면 그 사실을 독자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광고인지 기사인지 구분이 어려운 콘텐츠는 더 명확한 라벨을 붙여야 합니다.
시민은 정치 메시지를 읽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고 읽을 권리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설득은 허용됩니다. 하지만 위장된 설득은 경계해야 합니다.
결론: 뉴스의 형식을 빌린 정치 권력
Courier Newsroom 논란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한 매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정치 광고는 점점 뉴스처럼 보입니다. 캠페인 메시지는 지역 기사처럼 보입니다. 억만장자 후원은 공익 저널리즘처럼 보입니다. 정치 전략은 시민교육과 뉴스 리터러시의 언어를 입습니다. 선전은 “좋은 정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 변화는 위험합니다. 독자의 방어심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광고를 의심하지만, 뉴스를 믿습니다. 전국 정치 메시지는 경계하지만, 지역 뉴스는 신뢰합니다. 그래서 정치 콘텐츠가 지역 뉴스의 옷을 입으면 더 강력해집니다.
Courier Newsroom 논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것은 지역 뉴스인가, 정치 광고인가. 이것은 풀뿌리 언론인가, 아스트로터핑인가. 이것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는 일인가, 시민의 신뢰를 빌려 정치 메시지를 주입하는 일인가.
민주주의는 설득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득의 출처를 숨기는 것은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듭니다.
정치 광고는 정치 광고라고 말해야 합니다. 뉴스는 뉴스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선은 자선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캠페인은 캠페인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시민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시민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여론은 자유롭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