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검열, 오늘의 검열
과거의 검열은 비교적 알아보기 쉬웠습니다. 국가가 신문을 압수하고, 방송을 금지하고, 책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고, 특정 발언자를 처벌했습니다. 검열의 주체도 분명했습니다. 국가였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동아일보의 일장기 사태가 그랬고,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와 표현 금지, 전두환 정권 당시 삼청교육대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플랫폼 시대의 검열은 훨씬 복잡합니다. 오늘날 정보는 주로 신문 가판대나 방송국을 통해 유통되지 않습니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 틱톡 같은 플랫폼을 통해 유통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보가 보이고, 어떤 정보가 묻히며, 어떤 계정이 정지되고, 어떤 링크가 공유되지 못하는가는 플랫폼의 정책과 알고리즘에 크게 좌우됩니다.
이 점에서 현대의 검열은 국가가 직접 명령하는 방식보다 더 미묘합니다. 정부기관은 위험 정보를 경고합니다. 플랫폼은 커뮤니티 기준을 적용합니다. 전문가 집단은 허위정보를 판정합니다. 언론은 특정 정보를 위험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도합니다. 그러면 누구도 단독 책임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검열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 조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동 성착취물, 사기, 명백한 협박, 범죄 선동, 개인정보 유출, 악성 스팸, 봇 조작 같은 것은 당연히 제한되어야 합니다. 플랫폼이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표현의 자유의 장이 아니라 범죄와 조작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콘텐츠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모든 정보 통제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정치적 사안, 선거, 전쟁, 감염병, 기후, 외교 문제처럼 공적 판단이 필요한 주제에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주제들은 항상 불확실성을 포함합니다. 초기에 틀린 것처럼 보였던 주장이 나중에 일부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고, 공식 설명이 시간이 지나며 수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플랫폼이 특정 시점의 “공식 판단”을 기준으로 논쟁 자체를 축소하거나 차단하면,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이 약해집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진실을 전달받는 제도가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시민이 판단하고 논쟁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헌터 바이든 노트북 사건이 남긴 문제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의 헌터 바이든 노트북 보도 차단 논란입니다. 2020년 10월 뉴욕포스트는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 보도의 확산을 제한했습니다. 트위터는 링크 공유를 막았고, 페이스북은 보도의 배포를 줄였습니다.
당시 플랫폼들은 이 자료가 해킹되었을 가능성, 또는 외국의 정보작전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 해킹과 유출이 큰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플랫폼 입장에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가짜뉴스 차단”으로 정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자체 포렌식 분석을 통해 노트북 자료 중 상당수 이메일의 진위를 암호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전체 자료의 출처와 보관 과정에는 문제가 있었고, 모든 내용을 완전히 검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처음부터 단순한 허위정보나 러시아 조작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사안이었습니다.
트위터 전직 임원들도 2023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뉴욕포스트 보도 제한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해킹 자료일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이후 그 결정을 되돌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터 바이든 개인의 도덕성이나 조 바이든의 책임 여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직전 유권자가 알아야 할 수도 있는 정보를 플랫폼이 차단했다는 점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라면 언론이 검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검증과 차단은 다릅니다. 언론이 신중하게 보도하는 것과, 플랫폼이 링크 공유 자체를 막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디플랫폼화와 보이지 않는 필터: 트럼프 계정 퇴출과 자동완성 논란
2021년 1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거대 플랫폼들은 당시 현직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하거나 삭제했습니다.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 이후 추가적인 폭력 선동의 위험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플랫폼들의 설명이었고, 공공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은 강력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기업이 법적 절차 없이 국가 원수의 발언 채널을 임의로 차단해 공론장에서 지워버린 결정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원칙에 어긋나는 심각한 월권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단순한 계정 폐쇄 외에도, 검색엔진과 알고리즘을 통한 소프트웨어적 '필터링'은 더 은밀하게 작동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4년 7월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직후 불거진 구글 자동완성 편향 논란입니다. 당시 구글 검색창에 'assassination attempt on(암살 시도)'을 입력했을 때, 과거 로널드 레이건이나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등의 사례는 자동으로 추천 검색어에 떴으나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는 뜨지 않아 고의적인 정보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비록 구글은 단순 알고리즘 오류(버그)였다고 해명했지만, 이 해프닝은 거대 IT 기업이 대중의 정보 접근성을 얼마나 소리 소문 없이 왜곡할 수 있는지를 극명히 시사했습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검열을 하려면 신문 인쇄기를 멈추거나 방송 송신을 차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 시대의 필터링은 훨씬 조용합니다. 계정을 통째로 날리거나, 알고리즘 추천에서 배제하고(Shadowbanning), 검색 자동완성에서 누락시키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시선에서 특정 주장이나 역사적 사실을 서서히 지워갈 수 있습니다.
‘허위정보 대응’이라는 새로운 권력
현대 사회에서 “허위정보 대응”은 매우 강력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물론 허위정보는 실제 문제입니다. 선거 조작 주장, 백신 괴담, 전쟁 선전, 금융 사기, 가짜 의료 정보는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허위정보 대응”이라는 명분은 쉽게 확장됩니다. 처음에는 명백한 거짓말을 막는 데 쓰입니다. 다음에는 논란이 되는 주장에 경고 라벨을 붙입니다. 그 다음에는 공식 입장과 다른 해석의 노출을 줄입니다. 마지막에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문제 제기까지 위험한 정보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대개 선한 언어로 진행됩니다.
민주주의를 보호한다. 공중보건을 지킨다. 선거를 방어한다. 혐오와 폭력을 막는다. 사용자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이 말들은 모두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좋은 가치의 이름으로 표현의 범위를 줄일 때, 반대하는 사람은 쉽게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립니다. “왜 허위정보를 방치하자는 것이냐”는 질문 앞에서 표현의 자유는 방어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정확한 말만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틀릴 가능성이 있는 말, 불편한 말, 권력자가 싫어하는 말, 나중에 재검토될 수 있는 말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빅테크와 정부의 애매한 거리
플랫폼 기업은 민간기업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플랫폼의 기준을 적용할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플랫폼에는 자체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정부기관과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접촉할 때입니다. 정부가 직접 삭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해도, 정부기관이 특정 콘텐츠를 문제로 지적하고, 플랫폼이 이를 반영하여 노출을 줄이거나 삭제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실제 2024년 미 연방대법원의 머시 대 미주리(Murthy v. Missouri) 판결은 백악관과 정보기관이 빅테크를 뒤에서 조종했다는 핵심 논쟁을 다뤘습니다. 비록 대법원은 원고들의 소송 제기 요건(Article III standing) 미달을 이유로 본안 판단을 우회하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국가 권력과 플랫폼의 은밀한 협력이 사실상의 검열 역할을 한다는 민주주의적 위기감까지 걷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국가가 직접 검열하지 않아도, 정부와 플랫폼의 지속적 협력이 사실상 정보 유통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검열의 책임은 흐려집니다. 정부는 “우리는 권고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우리는 자체 기준을 적용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는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어떤 정보는 보이지 않고, 어떤 주장은 축소되며, 어떤 계정은 정지됩니다. 아무도 검열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보의 흐름은 분명히 통제됩니다.
플랫폼 검열의 가장 큰 문제는 불투명성이다
플랫폼 시대의 정보 통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투명성입니다. 신문사가 특정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은 편집 판단입니다. 방송사가 어떤 이슈를 다루지 않는 것도 편집 판단입니다. 물론 그것도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은 다릅니다. 플랫폼은 공론장의 기반 시설에 가깝습니다. 현대인은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보고,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 사회적 논쟁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콘텐츠 조정 기준은 대체로 불투명합니다.
어떤 글은 삭제됩니다. 어떤 글은 경고 라벨이 붙습니다. 어떤 글은 검색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계정은 추천에서 배제됩니다. 어떤 주제는 확산이 제한됩니다.
이 모든 것이 명확한 설명 없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검열당했는지, 알고리즘에 의해 묻힌 것인지, 단순히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검열은 눈에 보였습니다. 오늘의 검열은 통계와 알고리즘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탄압은 저항을 부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노출 조정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여론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주장이 잘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주장이 중요하지 않거나 지지자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여론인지, 플랫폼이 만든 가시성의 결과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이 문제에서 언론은 감시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론도 정보 통제 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은 특정 정보를 “음모론”, “허위정보”, “극우 주장”, “검증되지 않은 주장”으로 부르며 논쟁의 범위를 정합니다. 물론 그런 분류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언론이 너무 빨리 판단하면, 검증은 봉쇄가 됩니다. 언론이 특정 주제를 위험한 주장으로 분류하고, 플랫폼이 그 분류를 반영해 노출을 제한하며, 전문가 집단이 그 판단에 권위를 부여하면, 시민은 논쟁의 기회를 잃습니다.
이때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과 함께 논쟁의 경계를 설정하는 기관이 됩니다.
헌터 바이든 노트북 사건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건의 모든 주장이 옳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료에는 검증해야 할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언론은 차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검증해야 했습니다. 플랫폼은 유통을 막을 것이 아니라, 출처와 불확실성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현대 검열은 ‘관리’의 언어를 쓴다
오늘날 검열은 더 이상 검열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관리라고 불립니다. 조정이라고 불립니다. 안전이라고 불립니다. 신뢰와 무결성이라고 불립니다. 정보질서라고 불립니다.
이 단어들은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단어가 항상 약한 권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의 권력은 거친 명령보다 부드러운 관리의 형태로 작동할 때가 많습니다.
“삭제하라”는 명령보다 “노출을 줄인다”는 정책이 더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금지한다”는 말보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우선한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검열한다”는 말보다 “허위정보를 방지한다”는 말이 더 도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민이 볼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좁아진다면, 그것은 공론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보 통제가 항상 폭력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친절하고 합리적이며 기술적인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기계 정치와 정보 통제
이 문제는 기계 정치와도 연결됩니다. 기계 정치는 반드시 폭력적 독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차, 기준, 알고리즘, 전문가 네트워크, 위험 관리 시스템이 사람들의 선택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시대의 정보 통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중앙에서 모든 것을 명령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부기관은 위험 신호를 보냅니다. 플랫폼은 정책을 만듭니다. 알고리즘은 노출을 조정합니다. 팩트체커는 라벨을 붙입니다. 언론은 프레임을 정합니다. 시민은 그 결과로 구성된 정보 환경 안에서 판단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누구도 왕처럼 군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조금씩 공론장을 조정합니다. 그래서 책임은 분산되고, 권력은 흐려집니다.
이것이 현대 정보 통제의 핵심입니다. 검열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검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검열자가 보이지 않을 때, 검열은 더 자연스러운 환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방치가 아니라 견제다
이 글의 결론은 플랫폼을 아무 규칙 없이 방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플랫폼에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범죄, 사기, 아동 착취, 조직적 조작, 명백한 폭력 선동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누구에 의해, 어떤 절차로, 얼마나 투명하게 정해지는가입니다.
정부가 플랫폼에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요청은 기록되어야 합니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노출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과 절차는 설명되어야 합니다. 전문가가 위험을 경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판단도 반박 가능해야 합니다. 언론이 검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검증 대신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는 완벽한 사람들을 위한 권리가 아닙니다. 시민이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고, 불완전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권리"입니다. 민주주의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체제가 아니라, 위험 속에서도 공개적인 판단과 책임을 유지하려는 체제입니다. 대학에 와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듣는 법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조나단 하이트의 "나쁜 교육"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언론은 트럼프를 읽지 못했다
이 문제는 미국 플랫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언론의 미국 대선 보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미국 정치를 직접 취재하기보다 미국 주류 언론, 여론조사 기관, 워싱턴 전문가 집단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내부의 민심 변화보다, 미국 엘리트 미디어가 보고 싶어 하는 미국을 그대로 전달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럼프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많은 여론조사와 주류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실제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습니다. 국내 언론도 이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016년 선거 직후 미디어스는 한국 언론의 ‘트럼프 대이변’ 보도가 예고된 오보였다고 비판했고, 일부 국내 매체의 힐러리 승리 전제 보도와 사과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2024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었습니다. 선거 직전까지 미국 대선은 초박빙으로 보도되었고, 많은 해설은 해리스 우세 또는 박빙 구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개표가 시작되자 트럼프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결과를 냈습니다. 경향신문도 선거 직후 미국 여론조사 기관들이 ‘초접전’과 ‘역대급 박빙’을 점쳤지만, 실제로는 트럼프가 예상보다 큰 차이로 앞서며 여론조사 기관들이 다시 비판에 직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모든 한국 언론이 트럼프 가능성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2024년 선거 직전 일부 칼럼은 RealClearPolling 기준으로 트럼프가 선거인단 확보 전망에서 우세하다는 점을 지적했고, 일부 보도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개별 예측의 적중 여부가 아닙니다. 왜 한국 언론의 기본 프레임이 반복적으로 미국 주류 언론의 시각에 의존했는가입니다. 트럼프 지지층을 단순히 분노한 백인 노동자, 저학력층, 포퓰리즘에 휩쓸린 집단으로 설명하면, 트럼프 현상의 지속성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에 우연히 등장한 이변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계급 균열, 지역 격차, 문화 전쟁, 이민 문제, 산업 공동화, 엘리트 불신이 만들어낸 정치적 결과였습니다.
언론이 이 현실을 보지 못하면, 보도는 분석이 아니라 희망사항이 됩니다. 독자에게 실제 미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 동부 엘리트와 진보 성향 미디어가 해석한 미국이며, 국내 언론사의 확증편향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때 언론은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필터가 됩니다.
플랫폼이 알고리즘으로 정보를 걸러낸다면, 언론은 세계관으로 정보를 걸러냅니다. 그리고 이 두 필터가 같은 방향으로 작동할 때, 시민은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편집된 현실을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검열의 시대
1편에서 메타버스는 인간의 감각을 쇼핑몰로 바꾸려 했습니다. 2편에서 인스타그램은 인간의 주의력과 인정 욕구를 광고판으로 바꾸었습니다. 3편에서 플랫폼은 인간의 인식 환경을 조정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감각을 수익화하고, 주의력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조정한다면, 인간은 점점 더 플랫폼 안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플랫폼 시대의 가장 큰 위험입니다. 검열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검열이 더 부드럽고, 더 분산되고, 더 기술적인 형태로 바뀐 것입니다.
과거의 검열은 국가가 직접 했습니다. 오늘의 검열은 플랫폼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검열은, 아무도 자신이 검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검열입니다.
참고 자료
-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Murthy v. Missouri,” 2024.
- Associated Press, “Germany’s Angela Merkel calls Donald Trump’s Twitter ban ‘problematic’,” 2021.
- USA Today, “Google denies autocomplete bias after users notice Trump assassination attempt omissions,” 2024.
- Reuters, “Former Twitter execs tell Republicans they erred on Hunter Biden laptop story,” 2023.
- The Washington Post, “Here’s how The Post analyzed Hunter Biden’s laptop,” 2022.
- Axios, “Musk’s ‘Twitter Files’ spotlights Hunter Biden story ban,” 2022.
- U.S. House Oversight Committee, “Twitter’s Role in Suppressing the Biden Laptop Story (hearing transcript),” 2023.
- Mohit Singhal et al., “SoK: Content Moderation in Social Media, from Guidelines to Enforcement, and Research to Practice,” arXiv,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