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이름 없는 기둥, 소시민 보수주의자들


한국 현대사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우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라와 가족, 일터를 지켜온 애국적 소시민에게서 한국 보수주의의 뿌리를 찾습니다.

이름 없는 기둥, 소시민 보수주의자들

이름 없는 기둥, 소시민 보수주의자들

한국 현대사를 펼치면 좌파는 쉽게 보입니다.

노동운동가와 학생운동가, 사회주의자와 민주화운동가는 조직의 이름과 선언문, 투쟁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영웅으로 평가되든 악역으로 평가되든 역사에는 얼굴과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의외로 쉽게 조직을 만들고 활동가를 모았습니다. 거리로 나가고, 집회를 열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존재감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우파는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에서 우파의 얼굴은 대개 대통령과 장군, 재벌과 고위 관료입니다. 권력을 행사한 사람, 때로는 역사의 악역이 된 사람이 보수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들 말고 평범한 보수주의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한국의 우파는 권력을 가진 소수뿐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 나라를 지킨 사람이 권력자뿐일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우파는 자신의 이념을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출근하고, 월급으로 가족을 먹이고, 작은 가게와 공장을 지키며, 자녀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나라와 가정, 일터가 다음 날에도 계속되도록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한국 보수주의의 가장 넓은 뿌리는 바로 이 이름 없는 애국적 소시민에게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가

역사는 대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을 기록합니다. 누가 체제에 도전했고, 어떤 조직이 거리로 나왔으며, 무슨 선언이 세상을 흔들었는지를 적습니다.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에게는 운동의 이름과 시작일, 지도자와 구호가 있습니다.

반면 유지에는 기념할 만한 날짜가 없습니다.

전철이 매일 같은 시각에 움직이고, 가게가 다시 문을 열며, 부모가 다음 달 학비를 마련하는 일은 사건이 되지 않습니다. 어제 무너지지 않았던 사회가 오늘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뉴스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려 한 사람은 역사에 남지만, 사회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든 사람은 배경이 됩니다.

평범한 우파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치가 선언보다 생활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애국은 정부를 무조건 지지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완전하다고 믿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사는 마을과 가족이 기다리는 집, 일해야 할 직장과 자녀가 살아갈 미래가 이 나라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라는 추상적인 깃발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이 놓인 장소였습니다.

불완전한 나라를 지킨 사람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완성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했고 행정은 혼란스러웠으며, 민주주의 제도도 불완전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당한 일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은 이 나라를 버리거나 다른 체제로 교체하기보다 지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을 모두 보수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도 있었고, 정교한 정치철학 없이 징집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이념 교과서 속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이었고, 피난이 끝나면 돌아가 농사를 짓고 장사해야 할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국가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불완전한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웠습니다.

전쟁의 역사에는 전선을 움직인 장군과 체제를 뒤엎으려 한 조직의 이름이 남습니다. 영웅이든 악역이든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한 사람은 기록됩니다. 그러나 보초를 서고, 탄약을 나르고, 부상자를 돌보고,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 대부분의 이름은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이름 없는 선택에서 한국 소시민 보수주의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잃었을 때 가족과 공동체가 치러야 할 대가를 알았기 때문에 지킨 사람들입니다.

산업화를 수행한 이름 없는 사람들

전쟁 뒤에도 역사의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 지도자와 기업가, 민주화운동가와 노동운동가의 이름은 남았지만, 공장을 가동하고 시장의 문을 열고 자녀를 교육한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산업화의 관객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이 남지 않은 실행자였습니다.

농촌을 떠나 낯선 도시의 공장에 들어간 사람, 월급을 아껴 동생을 공부시킨 사람, 작은 점포를 열고 하루도 쉬지 못한 사람, 자녀 교육과 노후를 위해 소비를 미룬 사람이 한국 사회의 자본과 기술, 교육과 제도를 실제로 축적했습니다.

경제성장은 그들에게 더 많은 물건만 준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마련한 집과 저축, 직업과 자녀의 미래처럼 지켜야 할 생활 기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기반을 가진 사람은 변화의 약속만 보지 않습니다. 변화가 실패했을 때 가족이 감당할 손실도 함께 계산합니다.

이것이 소시민 보수주의의 신중함입니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치는 과정에서도 이미 작동하는 삶의 기반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물론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가족을 부양한 생활인이었습니다. 거리에서 항의하는 것과 일상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반대말이 아닙니다. 평범한 보수주의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항의했는가가 아니라, 개혁의 목적을 공동체의 파괴가 아닌 수선에 두었는가입니다.

보수주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집을 허물기 전에 금이 간 기둥을 고칠 수 있는지 먼저 묻는 태도입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제 집에 가자”

한국 사회는 전쟁과 가난, 정치적 혼란과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라가 다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의 결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직한 뒤 다시 일자리를 찾은 사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낯선 일을 시작한 사람, 가계 지출을 줄인 사람, 포기하지 않고 가게 문을 다시 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구호보다 자신의 자리를 먼저 복구했습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제 집에 가자.”

이 말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보수주의의 정치철학은 오히려 이 한마디에 가깝습니다. 모든 갈등을 파국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것, 그리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야 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들의 태도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안정을 앞세워 부당한 현실에 침묵했고, 권위에 복종했으며, 필요한 개혁을 늦춘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킨다는 말이 비겁함의 변명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시민 보수주의의 가치는 단순한 순응에 있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면서도 금이 간 곳을 고치고, 자신이 물려받은 세계를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다음 세대에 넘기는 데 있습니다.

대표 이미지 속 작은 집들은 하나의 거대한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기둥은 화려한 집보다 눈에 띄지 않지만, 기둥이 무너지면 집도 함께 무너집니다.

한국의 평범한 보수주의자들도 그와 같았습니다. 정치적 영웅이 되려 하지 않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나라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였기 때문에 지켰고, 가족과 일터와 작은 질서를 다음 날로 이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우파는 역사의 빈칸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역사 전체의 무게를 이름 없이 받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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