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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결혼관, 결혼은 매춘과 구분되지 않는가


매키넌의 급진적 페미니즘 결혼 비판을 중심으로 결혼, 매춘, 성희롱, 진화심리학, 피임 기술, 가부장제를 분석합니다.

진보의 결혼관, 결혼은 매춘과 구분되지 않는가

급진적 페미니스트 매키넌, 진화심리학, 그리고 기술이 바꾸는 남녀관계

캐서린 매키넌은 급진적 페미니즘 법학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성희롱, 포르노그래피, 성적 지배, 여성의 법적 지위 문제를 남성 권력의 구조 속에서 분석했습니다. 그녀의 글에는 페미니즘 이론이 남녀관계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의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도발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Feminism stresses the indistinguishability of prostitution, marriage, and sexual harassment.” Feminism Unmodified, 1987, p. 59

페미니즘은 매춘, 결혼, 성희롱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말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급진적 페미니즘이 전통적 남녀관계를 바라보는 핵심 프레임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여성의 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역할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라기보다 여성의 성과 노동을 장기적으로 독점하는 제도에 가깝고, 매춘은 여성의 성을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제도이며, 성희롱은 여성의 몸이 공적 공간에서도 남성의 평가와 욕망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매키넌에게 결혼, 매춘, 성희롱은 서로 완전히 다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남성 권력이 여성의 성을 규정하고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문장이 불편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결혼은 가족, 사랑, 헌신, 자녀 양육의 제도입니다. 그런데 매키넌은 그 결혼을 매춘이나 성희롱과 같은 선상에 놓습니다. 전통적 결혼을 소중한 삶의 기반으로 생각해 온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거의 모욕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단순히 과격한 주장이라고만 넘길 수는 없습니다. 역사 속 결혼 제도에는 실제로 여성의 종속이 있었습니다. 여성은 오랫동안 재산권, 교육권, 직업 선택권, 정치적 권리에서 제한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가족의 명예와 남성의 소유권에 가까운 방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과 보호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혼의 자유, 경제적 독립,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서 매키넌의 문제 제기는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 결혼을 오직 낭만적 사랑의 제도라고만 말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였지만, 동시에 권력의 제도였습니다.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통제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결혼을 개인적 관계로만 볼 것인지, 사회 전체에 이로운 제도로도 볼 것인지를 두고 인식이 갈립니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American Family Survey를 보면 “더 많은 사람이 결혼할수록 사회가 더 나아진다”는 문장에 대한 동의는 전반적으로 약해졌고, 공화당·무소속·민주당 사이의 차이도 계속 나타났습니다. 결혼을 공적 제도로 보는 시선과 사적 선택으로 보는 시선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결혼할수록 사회가 더 나아진다는 의견의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정당별 변화
결혼을 사회적 선으로 보는 태도는 약해지는 가운데 정당별 차이는 이어졌습니다. 출처: American Family Survey, 2025.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매키넌의 문장은 강력하지만, 인간의 남녀관계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단순히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념적 장치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거칠고, 훨씬 더 생물학적인 현실 위에서 형성된 제도였습니다.

피임약도 없고, 항생제도 없고, 영아 사망률도 높고, 육체노동과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시대에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한 아이를 낳는 것도 위험했지만, 여러 아이를 낳고 그중 일부라도 성인까지 길러내는 일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생존 프로젝트였습니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은 단순한 사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고, 가문의 문제였고,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반면 남성에게는 육체노동, 외부 위험, 전쟁, 자원 확보의 부담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이 분업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직 남성의 악의와 여성의 희생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전근대의 성별 분업은 불평등한 제도이면서 동시에 가혹한 자연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동맹이었습니다.

여기서 진화심리학의 관점이 들어옵니다.

진화심리학은 남녀관계를 선과 악의 도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전략을 발전시켜 온 생물학적 주체로 봅니다. 남성은 단순히 지배자가 아니었고, 여성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양쪽 모두 제한된 조건 안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성 불확실성이었습니다. 여성은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생물학적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성에게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아이가 실제로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원, 상속, 지위, 노동, 가문의 연속성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회에서 여성의 정절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규범입니다. 그러나 그 기원에는 단순한 도덕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부성 불확실성이라는 생물학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성은 자신의 자원이 자신의 자식에게 투입되기를 원했고, 사회는 이를 제도와 규범으로 고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통제당하기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진화심리학은 여성 역시 전략적 행위자였다고 봅니다. 여성은 안정적인 자원 제공자, 보호자, 장기적 양육 협력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동시에 더 좋은 유전적 조건,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생존 가능성을 가진 상대에게 끌릴 수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성전략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장기적 안정과 단기적 매력, 가족의 유지와 외부적 욕망, 사회 규범과 개인적 충동이 늘 충돌했습니다.

이 점에서 인간의 남녀관계는 매키넌이 말한 것처럼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이해관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성의 질투, 여성의 선택, 정절 규범, 외도, 상속, 자녀 양육, 혼인 제도는 모두 이 복잡한 생물학적 현실 위에서 움직였습니다.

전통적 가부장제는 이 복잡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 해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를 많이 포함했습니다. 여성의 자유를 제한했고, 남성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이 점에서 페미니즘의 비판은 정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제는 단순한 음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피임 기술이 없고, 친자 확인 기술이 없고, 국가 복지가 약하고, 노동이 육체에 의존하고, 출산이 위험했던 시대에 형성된 불완전한 생존 장치였습니다. 그 안에는 지배도 있었고, 협력도 있었습니다. 억압도 있었고, 보호도 있었습니다. 불평등도 있었고, 헌신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느 한쪽만을 진실로 만들 때 생깁니다.

전통 결혼을 오직 숭고한 가족 제도로만 보면 여성의 고통이 지워집니다. 반대로 전통 결혼을 오직 매춘이나 성희롱과 같은 지배 구조로만 보면, 그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생존과 헌신이 지워집니다. 인류는 관념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 먹이고, 지키고, 병을 견디고, 죽음을 통과하며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거친 생존 투쟁을 통과한 부모들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피임 기술입니다. 피임약과 다양한 피임 수단은 여성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성관계와 출산이 분리되면서 남녀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했으며, 또한 최근 들어 DNA 검사법이 저렴해지고 친자확인이 쉬워졌기 때문에 이제 속고 속이는 관계가 아니라 보다 진정성 있는 관계로 나아가기 쉬워졌습니다.

과거의 결혼관

한편 우리가 과거의 남녀관계나 결혼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은 당시 여성의 출산 부담입니다. 오늘날 저출산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전근대의 결혼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피임 기술이 제한적이고, 영아 사망률이 높고, 의료 체계가 약했던 시대에 여성은 평생 5명, 6명, 때로는 그 이상의 아이를 낳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구전환 이전 사회에서 높은 출산율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임신은 몸을 바꾸고, 출산은 생명을 건 사건이었으며, 양육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노동이었습니다. 한 아이를 낳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과 수유와 돌봄이 여성의 성인기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중 일부는 병과 굶주림으로 죽었고, 살아남은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일은 가족 전체의 생존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전근대의 결혼은 오늘날의 연애 결혼과 같은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적 관계의 제도이면서 동시에 출산의 제도였고, 양육의 제도였으며, 노동 배분의 제도였습니다. 여성의 삶은 출산과 양육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남성의 삶은 외부 노동, 자원 확보, 전쟁과 위험 부담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 분업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고출산과 높은 사망률이라는 가혹한 인구학적 현실 위에서 만들어진 생존 구조였습니다.

이 점을 보지 못하면 과거의 관습은 오직 억압으로만 보입니다. 반대로 이 점만 보고 여성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해도 안 됩니다. 전통적 가족 제도는 동시에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성의 삶을 출산과 양육에 묶어 둔 불평등한 제도였고, 다른 하나는 그 엄청난 출산과 양육 부담을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감당하기 위한 생존 장치였습니다.

에필로그

캐서린 매키넌은 전통적 결혼 제도가 가진 비대칭성을 맹렬히 비판했고, 실제로 평생 단 한 번도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1990년대 초, 정신분석학계에서 프로이드의 문제점을 폭로한 제프리 마송과 약혼하며 이념과 사상을 공유하는 대등한 파트너십을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독하게 인위적이고 이념적인 관계 기획은 지속되지 못하고 파혼으로 끝났습니다. 흥미로운 반전은 그 이후 마송의 행적입니다. 인간의 위선과 말장난에 환멸을 느꼈던 마송은 결국 다른 여성과 '전통적인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고, 최종적으로는 말이라는 기만이 통하지 않는 '동물의 순수한 본능과 세계'에서 구원을 찾았습니다. 참고로 마송은 동물행동학에 관심이 많아, 국내에서도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이라는 책이 번역된 바 있습니다.

매키넌은 철저하게 결혼 제도를 거부하며 자신의 이념적 순수성을 지켰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파트너였던 마송이 결국 회귀한 곳은 오랜 세월 검증된 관습적인 가정과 생물학적 사실의 세계였습니다. 인간이 머릿속으로 설계한 무결점의 이념적 관계는 현실이라는 복잡한 하드웨어 위에서 얼마나 유지되기 어려운지, 이들의 짧았던 지적 동행과 갈라진 종착지가 잘 보여줍니다.

캐서린 매키넌이 평생 결혼이라는 제도적 울타리 없이도 당당하고 우아하게 자신의 이념을 실험하며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변호사이자 하버드 등 명문대 종신교수로서 누린 "막강한 경제적 자본과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었습니다. 제도 밖으로 걸어 나가도 안전망이 튼튼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 기획주의적 이념을 실제 삶의 안전망이 절박한 "하층민이나 흑인 여성들이 그대로 모방했을 때 벌어진 파편화의 비극"은 참혹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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