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위정보는 분명히 문제입니다. 거짓 정보는 선거를 왜곡할 수 있고, 공중보건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으며, 전쟁과 외교 문제에서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가 사회적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허위정보와 싸우겠다는 말에는 항상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누가 허위정보를 판정하는가.
이 질문이 빠지면 허위정보와의 전쟁은 쉽게 정보 권력의 문제로 바뀝니다. 거짓을 막는다는 명분은 선해 보이지만, 그 명분을 가진 사람이 진실을 판정하고, 플랫폼을 움직이고, 언론의 신뢰도를 배급하고, 시민에게 어떤 뉴스를 믿어야 하는지 가르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순간 문제는 허위정보가 아닙니다. 문제는 진실을 관리하려는 권력입니다.
오바마의 스탠퍼드 연설
2022년 4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허위정보에 관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허위정보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이 정보 환경을 바꾸었고, 사람들이 더 이상 같은 사실을 공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정보 환경은 과거와 다릅니다. 과거에는 주요 방송사와 대형 신문이 여론 형성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튜브, 팟캐스트, 블로그, 소셜미디어, 독립 언론, 개인 계정이 모두 정보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퍼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혼란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도 낳았습니다.
과거의 언론 환경은 더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언론사가 정보의 문지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정보 환경은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허위정보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보의 문을 다시 소수 엘리트에게 맡길 것인가.
공유된 사실인가, 공유된 권위인가
오바마는 과거 미국인들이 월터 크롱카이트 같은 주요 앵커를 통해 “공유된 사실”을 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럴듯합니다. 한 사회가 공통의 사실 기반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공유된 사실”은 정말 모두가 자유롭게 도달한 사실이었을까요. 아니면 소수 언론기관이 선택하고 배열하고 설명한 사실이었을까요.
주류 언론은 많은 중요한 보도를 했습니다. 권력 감시와 부패 폭로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류 언론은 수많은 오판과 편향, 선전, 침묵에도 관여했습니다. 전쟁 보도에서 그랬고, 금융위기 보도에서 그랬고, 팬데믹 보도에서도 그랬고, 정치 스캔들 보도에서도 그랬습니다.
따라서 “공유된 사실”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 사회적 합의일 수 있지만, 때로는 공유된 권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모두 같은 사실을 본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문지기를 통과한 정보를 본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보 환경의 혼란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정보 질서가 순수했던 것은 아닙니다.
콘텐츠 조정이라는 새 이름
허위정보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콘텐츠 조정”입니다. 영어로는 content moderation입니다. 겉으로는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표현처럼 들립니다. 플랫폼이 폭력 선동, 사기, 범죄, 아동 착취, 명백한 조작 정보를 관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콘텐츠 조정이 정치적 의견과 논쟁적 주장으로 확장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주장이 위험한가. 어떤 주장이 허위인가. 어떤 주장이 선거를 해치는가. 어떤 주장이 공중보건을 위협하는가. 어떤 주장이 혐오인가. 어떤 주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기술 판단이 아닙니다. 정치적 판단입니다. 가치 판단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플랫폼, 정부기관, 팩트체크 단체, 재단이 후원하는 연구기관이 함께 수행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새로운 검열 체계가 됩니다.
검열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습니다. 노출 제한, 검색 순위 조정, 경고 라벨, 추천 배제, 수익화 중단, 계정 정지, 공유 제한, 알고리즘 감속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부드러워졌다고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검열은 책을 태우지 않습니다. 링크의 도달률을 낮춥니다. 계정을 정지합니다. 검색 결과에서 밀어냅니다. 광고 수익을 차단합니다. 뉴스피드에서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강력합니다.
허위정보와 반대 의견의 경계
허위정보와 반대 의견은 다릅니다. 명백한 조작 정보는 비판받아야 합니다. 일부러 만든 가짜 사진, 조작 영상, 허위 통계, 사기성 의료정보, 선거 절차에 대한 명백한 거짓말은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중요한 논쟁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팬데믹 초기의 마스크 효과, 학교 폐쇄,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 자연면역, 바이러스 기원, 봉쇄의 피해 같은 문제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며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어떤 주장은 처음에는 위험한 허위정보로 취급되었다가 나중에는 논쟁 가능한 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주장은 틀렸고, 어떤 주장은 부분적으로 맞았고, 어떤 주장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영역에서 국가나 플랫폼이 너무 빨리 진실을 확정하면, 과학은 토론이 아니라 행정명령이 됩니다. 민주주의는 설득이 아니라 콘텐츠 관리가 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제도, 우편투표, 국경정책, 범죄정책, 외교정책, 전쟁 책임, 정보기관의 행위 같은 문제들은 모두 논쟁적입니다. 한쪽 진영은 상대의 주장을 허위정보라고 부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상대의 주장을 허위정보로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개 토론으로 반박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허위정보라는 딱지는 매우 강력합니다. 한번 붙으면, 그 주장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이 딱지를 누가 붙이는지가 중요합니다.
뉴스 리터러시인가, 신뢰의 배급인가
허위정보와의 전쟁에서 또 하나 중요한 도구는 뉴스 리터러시입니다. 시민들에게 뉴스를 읽는 법, 출처를 확인하는 법, 음모론과 허위정보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취지입니다. 겉으로는 훌륭한 목표입니다. 실제로 시민은 정보 판단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뉴스 리터러시가 특정 언론을 신뢰하라고 가르치고, 특정 언론을 의심하라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바뀌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비판적 사고 교육이 아니라 신뢰의 배급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시민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신뢰의 배급은 시민에게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두 가지는 다릅니다.
정말 필요한 뉴스 리터러시는 주류 언론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정부 발표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팩트체커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과학자도, 기업도, 재단도, 정보기관도, 소셜미디어도 모두 인간과 조직이 만든 권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뉴스 리터러시 운동은 시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전문가를 믿어라. 주류 언론을 믿어라. 공식 기관을 믿어라. 팩트체커를 믿어라. 플랫폼의 판단을 믿어라.
이것은 리터러시가 아닙니다. 순응 훈련입니다.
팩트체크 산업의 문제
팩트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팩트체크는 필요합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을 검증하고, 조작된 자료를 바로잡고, 통계를 확인하는 일은 언론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그러나 팩트체크가 모든 논쟁의 최종심이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팩트체커도 사람입니다. 팩트체커도 언론사에 속해 있고, 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정치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검증할지 선택하는 것부터 이미 판단입니다. 어떤 표현을 “거짓”, “대체로 거짓”, “맥락 부족”, “오해의 소지가 있음”으로 분류할지도 판단입니다.
문제는 플랫폼이 이 판단을 콘텐츠 노출 제한과 연결할 때입니다. 팩트체크가 단순한 반박이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팩트체크 결과가 게시물 삭제, 공유 제한, 계정 경고, 수익화 중단으로 이어지면 팩트체크는 언론 행위가 아니라 준사법적 권력이 됩니다.
그런데 이 권력은 선거로 선택되지 않습니다. 법원의 절차를 거치지도 않습니다. 오류가 있어도 피해자가 충분히 구제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팩트체크의 문제는 팩트체크 자체가 아닙니다. 팩트체크가 플랫폼 권력과 결합할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허위정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틀린다
허위정보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이 진실의 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틀립니다. 때로는 크게 틀립니다.
오바마 자신도 대표적인 정치적 허위 발언 논란을 남겼습니다. 오바마케어를 설명하면서 “현재의 건강보험이 마음에 든다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이 발언은 이후 큰 논란이 되었고 PolitiFact가 2013년 “올해의 거짓말”로 선정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대량살상무기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류 언론과 정부기관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러티브를 확산시켰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오판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는 단순한 정보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었고, 막대한 인명 피해와 비용이었습니다.
헌터 바이든 노트북 사건도 정보 권력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2020년 대선 직전 뉴욕포스트의 보도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제한되었고,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러시아 정보작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노트북 자료의 상당 부분은 주요 언론들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보도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허위정보”라는 라벨이 선거 직전 중요한 보도를 억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례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진실을 관리하겠다는 사람들도 틀립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진실의 독점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말도 견디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인 정보관리 시스템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느리고, 불편합니다. 틀린 말도 나오고, 과장도 나오고, 음모론도 나오고, 선동도 나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것을 공개 토론과 반박, 언론 자유, 법적 책임을 통해 다루는 제도입니다.
허위정보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 흐름을 중앙에서 관리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성격은 바뀝니다. 시민은 판단하는 주체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뀝니다. 엘리트 기관은 토론의 참여자가 아니라 진실의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말이 보호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훼손, 사기, 폭력 선동, 범죄 공모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법과 절차로 다루어야 합니다. 플랫폼과 재단, 정부기관이 비공식적으로 협력해 불편한 주장을 조용히 지우는 방식으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사회는 허위정보가 없는 사회가 아닙니다. 자유사회는 허위정보를 이유로 진실의 독점권을 만들지 않는 사회입니다.
결론: 허위정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진실 독점이다
허위정보는 위험합니다. 그러나 허위정보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진실을 중앙에서 관리하려는 권력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반박할 수 있습니다. 오류는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은 공개 토론에서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관리하는 권력이 만들어지면, 그 권력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까지 허위정보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허위정보와의 전쟁은 단순히 거짓과 진실의 싸움이 않입니다. 그것은 누가 진실을 판정할 권한을 갖는가의 문제입니다. 정부인가. 플랫폼인가. 주류 언론인가. 억만장자 재단이 후원하는 팩트체크 단체인가. 뉴스 리터러시 기관인가.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인가.
민주주의에서 진실은 한 기관이 배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공개된 논쟁, 검증, 반박, 오류 수정, 다양한 정보원의 경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위정보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검열이 아닙니다. 더 많은 토론입니다. 더 투명한 자료입니다. 더 다양한 언론입니다. 더 강한 반론입니다. 그리고 어떤 기관도 진실의 최종 소유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허위정보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진실 독점은 더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