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평등을 말하는 나라의 새로운 특권


프랑스 혁명은 신분적 특권을 폐지했지만, 오늘날 프랑스의 지도층은 얼마나 평등을 실천하고 있을까. 그랑제콜, 면접시험과 엘리트 네트워크를 통해 살펴본 프랑스 능력주의의 모순.

평등을 말하는 나라의 새로운 특권

프랑스는 평등을 국가의 공식 언어로 만든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프랑스 공화국의 표어는 자유, 평등, 박애입니다. 프랑스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출신계급과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좌파와 리버럴 지도층은 교육과 복지, 공공제도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실제 지도층을 보면 이상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대통령과 장관, 고위관료, 대기업 경영자와 금융계 인사 가운데 같은 소수의 그랑제콜 출신이 계속 등장합니다. 파리의 명문 고등학교와 그랑제콜 준비반을 거친 사람들이 다시 최고 교육기관에 들어가고, 졸업한 뒤에는 행정부와 대기업의 핵심 자리를 오갑니다.

프랑스 공공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그랑제콜 학생의 약 3분의 2는 사회적으로 매우 유리한 가정 출신입니다. 학교가 선별적일수록 상층계급과 파리권 출신의 비율은 더욱 높아집니다.

그랑제콜의 시험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실제로 공부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합격증을 직접 물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같은 계층의 자녀들이 반복해서 지도층으로 들어갈까요?

프랑스의 특권은 규칙을 노골적으로 어기는 방식보다, 규칙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특권을 폐지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권리가 달랐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은 조세와 관직, 토지와 재판에서 여러 특권을 누렸습니다. 반면 평민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받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신분적 질서를 부정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고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게 태어나며, 법은 모든 시민에게 동일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없앤 것은 법으로 보장된 특권이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의 교육환경과 인맥, 말투와 생활방식까지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법은 평등해졌지만, 가족이 자녀에게 물려주는 자원은 여전히 달랐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의 세습을 무너뜨렸지만, 사회적 우위가 다른 형태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현상까지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귀족의 가문 대신 엘리트 교육경로가 등장했습니다

혁명 이후 프랑스는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지도층을 선발하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 그랑제콜이 있습니다.

그랑제콜은 일반 대학과 구별되는 프랑스 특유의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입니다. 학생들은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랑제콜 준비반인 CPGE에서 공부하고, 경쟁시험인 콩쿠르를 통과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매우 공정한 제도입니다. 부모의 작위가 아니라 시험성적으로 사람을 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발은 시험 당일에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자랐는지, 어떤 고등학교에 다녔는지, 좋은 준비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몇 년 동안 소득 없이 공부할 여유가 있었는지가 이미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상층가정의 부모는 자녀 대신 시험을 치르지 않습니다.

대신 좋은 지역과 학교를 선택하고, 어떤 과목과 준비반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자녀가 논술과 외국어, 토론과 발표에 익숙해지도록 교육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을 제공합니다.

자리를 직접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경로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문은 열려 있지만 그 문까지 가는 길은 다릅니다

프랑스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랑제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책과 예술, 외국어와 토론에 익숙합니다. 부모와 친척 가운데 이미 그랑제콜 출신자가 있어 진학경로를 잘 압니다. 좋은 준비반을 고르는 법과 시험에 실패했을 때의 대안도 알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은 성적이 뛰어나더라도 그랑제콜이 자신과 관계없는 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도 큽니다.

결국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 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같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상층계급의 자녀가 실제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특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든 환경까지 모두 개인의 능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공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의 면접시험은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대학은 면접과 구술시험을 통해 시험점수로 알 수 없는 잠재력, 인성, 판단력과 표현능력을 평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짧은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미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근거는 생각보다 빈약합니다.

로빈 도스(Robyn Dawes)가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에서 소개한 텍사스 의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면접에서 거의 최하위권으로 평가받아 다른 의대에서도 대부분 탈락했던 학생들이 정원 확대 때문에 추가로 입학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들이 기존 선발학생보다 훨씬 낮은 성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의과대학 성적, 레지던트 평가와 의사 면허 취득률을 비교한 결과 두 집단 사이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었습니다.

면접관들은 학생의 미래 성과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면접에서는 무엇을 평가했을까요?

면접이 실제 능력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면, 말투와 자신감, 옷차림, 교양과 사회적 태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상층계급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어른과 토론하며, 권위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익힙니다. 부모는 예상 질문을 알려주고 모의면접을 준비해 줄 수 있습니다.

반면 같은 학업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도 이런 경험이 부족하면 소극적이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면접은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기보다, 기존 엘리트가 익숙하게 느끼는 언어와 태도를 가진 사람을 선택할 위험이 있습니다.

면접은 미래의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면서도 사회계층을 구별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문화자본은 특권을 능력으로 바꿉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교육이 계급적 불평등을 없애기보다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 자체가 상층계급의 언어와 생활방식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상층가정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책과 예술, 토론과 추상적인 언어에 노출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길게 설명하고, 논쟁하며,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학교는 부모의 재산을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가정에서 물려받은 어휘와 태도, 자신감과 사고방식을 평가합니다.

가정에서 물려받은 문화자본이 학교 안에서 개인의 교양과 지능, 잠재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 결과 상층계급의 자녀는 실제로 말을 잘하고 시험도 잘 봅니다. 누구도 그들의 능력이 완전히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이 오직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맥은 가족의 지위를 개인의 경력으로 바꿉니다

엘리트의 자녀는 좋은 교육만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인간관계를 통해 좋은 인턴십, 연구경험과 사회활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동료나 선후배가 있는 기관에서 일을 경험하고, 유명한 교수나 책임자의 추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대개 불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의 학생은 그런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이후 대학과 기업은 그 경력을 지원자의 적극성, 경험과 잠재력으로 평가합니다.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 개인의 경력으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맥으로 얻은 기회는 이력서에서는 자녀의 성취로 보입니다.

이것이 현대 엘리트 재생산의 특징입니다.

자리를 직접 청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경력과 추천, 교육과 태도를 미리 만들어 주면 자녀는 공식적인 경쟁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우리끼리의 세계’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을 설명할 때 앙트르수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직역하면 ‘우리끼리의 세계’에 가깝습니다.

같은 명문학교와 준비반을 거치고, 비슷한 지역과 계층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신뢰하는 구조입니다.

누군가가 직접 “같은 학교 출신이니 뽑자”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슷한 경력과 말투를 가진 사람을 보면 능력 있고 세련되며 조직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배경의 사람은 실력이 비슷해도 어딘가 어색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학연이나 계급적 편향이 아니라 전문성과 조직 적합성의 평가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차별받은 사람은 그것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출신계층 때문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표현력이 부족했고, 조직문화에 맞지 않았으며,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같은 엘리트가 국가와 기업을 오갑니다

프랑스의 엘리트 네트워크는 대학 입학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랑제콜 출신자는 고위공무원이 되어 국가정책과 규제를 다루고, 이후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자문회사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공직과 민간기업 사이의 이동을 팡투플라주라고 부릅니다.

공직자가 민간기업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항상 부패는 아닙니다. 행정경험을 가진 사람이 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학교와 같은 관료집단 출신자가 국가와 기업의 핵심 자리를 반복해서 오간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그 규칙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니라, 같은 교육기관과 인맥을 공유하는 동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상의 귀족은 사라졌지만, 국가와 기업의 핵심 자리를 순환하는 폐쇄적인 지도층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부르디외가 프랑스의 고위관료와 엘리트학교 졸업자들을 가리켜 ‘국가 귀족’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헤게모니는 자리를 주는 힘보다 기준을 정하는 힘입니다

엘리트의 가장 강력한 힘은 자기 자녀에게 직접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능력이라고 부를 것인지 정하는 힘입니다.

어떤 말투가 지적이고, 어떤 경력이 가치 있으며, 어떤 태도가 지도자답고, 어떤 의견이 공공성을 가진 것인지 결정합니다.

이것이 헤게모니입니다.

노골적인 낙하산은 규칙을 어기기 때문에 드러나면 비판받습니다. 그러나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은 자신에게 익숙한 특성을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중립적인 기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교육과 배경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면서도 그것을 학연이나 계급적 편향이 아니라 능력과 전문성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도층은 자기 자녀에게 자리를 직접 물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지배하면 됩니다.

평등을 말하는 지도층도 자기 자녀 앞에서는 계급적입니다

프랑스의 좌파와 리버럴 지도층은 공교육과 복지국가, 차별 철폐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녀는 더 좋은 지역의 학교와 명문 준비반에 보내려고 합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녀가 얻은 명문학교 학위와 인맥은 정당한 개인적 성취로 받아들입니까.

물론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는 행동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자녀가 누리는 우위를 순수한 노력의 결과라고만 설명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계층의 실패는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설명하면서 자기 자녀의 성공은 노력과 재능의 결과라고만 말한다면, 평등은 정치적 구호에 머물게 됩니다.

재산의 상속은 쉽게 특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좋은 학교와 언어, 인맥과 문화적 자신감의 상속은 능력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특권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특권은 능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현대 엘리트의 가장 세련된 자기방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좌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프랑스의 엘리트 재생산은 좌파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대기업과 금융권의 보수적 엘리트도 명문학교와 가족 네트워크를 이용합니다. 우파 상층은 재산과 기업, 상속과 금융을 통해 지위를 유지합니다.

좌파 또는 리버럴 상층은 교육과 문화, 대학과 언론, 행정기관에서 통용되는 자격과 언어를 통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평등을 가장 강하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은 평등만을 지지하는 것은 진정한 평등주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평등의 진정성은 다른 사람의 특권을 비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가 누리는 우위까지 특권의 일부로 인정할 때 드러납니다.

프랑스는 특권을 없앤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것일지도 모릅니다

구체제의 프랑스에서는 태어난 신분이 사람의 자리를 결정했습니다.

현대 프랑스에서는 시험과 학력, 경력과 사회적 평가가 자리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발전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뛰어난 학생이 국가의 최고 지도층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혁명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러나 세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귀족의 작위 대신 명문학교 졸업장이 등장했고, 귀족의 살롱 대신 준비반과 동문 네트워크가 등장했습니다.

특권은 혈통의 언어를 버리고 능력과 교양, 경력과 잠재력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과거의 귀족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특권은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

이제 그 질문을 현대의 지도층에게 다시 물어야 합니다.

“당신의 자녀가 차지한 자리는 오직 개인의 능력으로 얻은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가진 교육, 인맥과 문화적 권력이 제공한 결과입니까?”

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규칙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나와 내 자녀에게 유리한 질서를 얼마나 기꺼이 개방할 수 있는가, 그 지점에서 평등의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참고문헌

  1. Institut des politiques publiques. “Grandes Écoles: Have They Become More Socially Inclusive Since the Mid-2000s?” IPP Policy Brief No. 61, 2021.

  2. DeVaul, Robert A., et al. “Medical School Performance of Initially Rejected Students.” JAMA 257, no. 1, 1987: 47–51.

  3. Dawes, Robyn M. House of Cards: Psychology and Psychotherapy Built on Myth. New York: Free Press, 1994.

  4. Bourdieu, Pierre, and Jean-Claude Passeron. The Inheritors: French Students and Their Relations to Cultur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5. Bourdieu, Pierre. The State Nobility: Elite Schools in the Field of Power.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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