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가 폭력을 도덕화한 혁명가였다면, 피델 카스트로는 그 폭력을 국가 전략으로 바꾼 정치가였습니다. 체 게바라의 폭력은 총살장과 게릴라 전장에서 드러났지만, 카스트로의 폭력은 더 교묘했습니다. 그는 총을 쏘지 않고도 상대국의 제도와 양심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980년의 마리엘 보트리프트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1980년 4월부터 10월까지 약 12만5천 명의 쿠바인이 마리엘 항구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공산 독재를 피해 자유를 찾아간 난민 탈출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안에는 자유를 원한 평범한 쿠바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카스트로 정권이 이 흐름을 단순히 허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편한 사람들을 골라 미국으로 보내는 기회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의 출발점은 쿠바 내부의 불만이었습니다. 많은 쿠바인이 페루 대사관으로 몰려가 망명을 요구했고, 카스트로는 결국 마리엘 항을 열어 원하는 사람은 떠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쿠바계 이민자들은 가족과 친지를 데려오기 위해 배를 몰고 쿠바로 갔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구조 작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카스트로에게 이것은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인도주의를 잘 알았습니다. 미국은 난민을 외면하기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공산주의 독재를 피해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이 스스로 내세운 자유와 인권의 명분이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카스트로는 바로 그 약점을 보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도덕적 자부심을 미국의 부담으로 바꾸었습니다.
문제는 이주민의 구성에 있었습니다. 마리엘 이주민 대다수는 일반 난민이었지만, 그 안에는 범죄자와 정신병원 수용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미국 측에서도 쿠바가 감옥과 정신병원 수용자를 섞어 보냈다는 증언과 기록이 나왔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숫자를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후 미국 법 기준으로 중범죄자 또는 폭력범으로 분류된 사람은 전체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카스트로 정권이 난민 흐름을 이용해 자국의 부담을 미국으로 이전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주”가 아니라 “전략”이었습니다. 카스트로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미국이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이용했습니다. 난민 보호, 인권, 자유, 개방성이라는 원칙은 문명국가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그것을 공유하지 않고 오직 공략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 강점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건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유엔군은 제네바협약의 틀 안에서 포로를 보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친공 포로 조직은 그 규칙을 이용해 내부 조직을 만들고, 반대자를 위협하고, 수용소장을 납치했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쪽은 제약을 받았고, 규칙을 도구로만 보는 쪽은 그 제약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은 난민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카스트로는 난민 흐름을 정치적 탄약으로 보았습니다. 한쪽은 인도주의의 언어로 상황을 이해했고, 다른 한쪽은 병법의 언어로 상황을 설계했습니다.
이것이 병법의 무서운 점입니다. 병법은 상대의 선의를 선의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용 가능한 지형으로 봅니다. 상대가 법을 지키면 그 법을 족쇄로 만들고, 상대가 인권을 말하면 그 인권을 부담으로 만들며, 상대가 개방성을 자랑하면 그 개방성을 침투로로 만듭니다.
물론 마리엘 보트리프트를 단순히 “난민 침공”으로만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실제로 자유를 원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카스트로의 폭정을 피해 나온 사람들을 모두 전략의 도구로 보는 것은 또 다른 부정의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카스트로의 방식은 더 교묘했습니다. 진짜 난민의 흐름 속에 정권의 계산을 섞으면, 상대는 쉽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인도주의적 보호와 국가 안보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카스트로는 이 경계를 이용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의 불만 세력을 내보내고, 사회적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미국 내부에 정치적 부담을 안겼습니다. 미국은 뒤늦게 그 문제를 깨달았지만, 이미 수만 명이 들어온 뒤였습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는 미국 카터 행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을 주었고, 미국 사회에는 난민 수용과 국경 관리에 대한 깊은 논쟁을 남겼습니다.
카스트로의 전략은 체 게바라보다 더 차갑습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이름으로 적을 처형했습니다. 카스트로는 혁명의 이름으로 사람의 이동 자체를 무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을 해방의 주체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이동을 상대국을 흔드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말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가. 인권, 난민, 해방, 자유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선해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단어는 언제나 사용자의 의도와 결합됩니다. 인도주의의 언어도 권력자가 사용하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칙도, 규칙을 믿지 않는 세력에게는 공격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가 경계하는 것은 난민 그 자체가 아닙니다. 보수주의가 경계하는 것은 인간과 제도를 지나치게 순진하게 보는 태도입니다. 모든 이주민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이주를 순수한 인도주의로만 해석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국가는 연민을 가져야 하지만, 연민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는 이 점을 보여줍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군사력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미국의 도덕적 습관을 이용했습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였기 때문에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카스트로는 바로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체 게바라가 폭력을 낭만으로 포장했다면, 카스트로는 인도주의를 병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20세기 혁명정치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총을 든 혁명가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더 위험한 것은 인간의 고통과 자유의 언어를 전략적 무기로 바꾸는 정치가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법과 인권, 개방성과 신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들이 유지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상대도 최소한 그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상대가 규칙을 믿지 않고 오직 이용한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자신의 선의 때문에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마리엘 보트리프트의 교훈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도는 순진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주의는 지켜야 하지만, 인도주의가 어떻게 무기화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선의가 악용되는 방식을 보아야 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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