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를 단순히 변화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보수주의도 필요하면 제도를 바꾸고, 진보주의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도는 지키려 합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한쪽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제도와 권력 역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쪽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올바른 제도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전자를 인본주의자, 후자를 사회공학자라고 부르려 합니다.
물론 현실에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 안에도 두 성향은 함께 있습니다. 가족 문제에서는 사람의 약함을 너그럽게 이해하면서도, 정치 문제에서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원칙에 맞게 바꾸려 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급진적인 개혁을 믿다가 경험이 쌓인 뒤 제도의 한계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본주의자와 사회공학자는 실제 사람을 정확하게 분류하기 위한 이름이 아닙니다. 여러 시대와 여러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두 가지 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인물형입니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통제해야 하는가
16세기 종교개혁기의 칼뱅과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이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역사적 사건에 대입할 때, 종교개혁가인 칼뱅을 진보와 개혁의 측면에 놓고 가톨릭을 보수와 수구의 측면에 놓기 쉽습니다. 그러나 절차적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칼뱅의 대척점에 선 더 선명한 보수주의자는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입니다.
칼뱅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욕망과 무지 때문에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기 어렵고, 따라서 참된 교리와 엄격한 규율을 가진 공동체가 사람을 교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활동한 제네바에서는 시민의 신앙과 일상생활을 감독하는 강한 종교 규율이 만들어졌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지, 가톨릭적 관습을 유지하는지, 술과 도박에 빠지는지, 부부관계와 성생활은 올바른지, 사치와 욕설을 일삼는지까지 공동체의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칼뱅 개인의 권력욕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칼뱅은 타락한 도시를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더 경건하고 정직하며 질서 있는 공동체를 만들려 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선한 공동체의 모습을 알고 있으며, 제도와 규율을 이용해 사람들을 그 모습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는 데 있습니다.
카스텔리오도 인간이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이 오류를 범한다면 교리를 해석하는 사람도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도 틀릴 수 있고, 심판하는 사람도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해석을 절대적인 진리로 선언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과 양심을 폭력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카스텔리오의 생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칼뱅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카스텔리오는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규율을 행사하는 권력도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가 사회공학적 태도와 인본주의적 태도의 핵심입니다.
세르베투스의 죽음
두 사람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처형이었습니다.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고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이단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는 1553년 제네바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뒤 화형당했습니다.
사형을 결정한 법적 주체는 제네바 시의회였고, 당시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이단을 공공질서에 대한 중대한 범죄로 보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르베투스의 죽음을 칼뱅 한 사람의 특이한 잔혹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칼뱅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칼뱅은 재판과 처벌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처형 이후에도 이단자를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카스텔리오는 이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세르베투스의 교리가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틀린 교리는 글과 논리로 반박해야 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교리를 지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태도에서 중요한 것은 관용이 모든 의견을 옳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스텔리오는 진리와 오류의 차이를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타인을 제거할 권리로 바뀌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인본주의는 판단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판단하면서도 판단하는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남겨두는 태도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위험해지는 순간
사회 개혁가는 대개 악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부정의와 고통에 더 민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고, 잘못된 관습을 바꾸려 하며, 약자를 보호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선한 의도가 위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추구하는 선을 분명히 안다고 생각하면, 그 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점차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선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설득하려 합니다. 설득으로 바뀌지 않으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도 따르지 않으면 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항하면 그 사람은 단순한 반대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가 됩니다.
이 과정은 대개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선한 이상이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바뀌고, 올바른 생활방식은 공동체의 규범이 됩니다. 규범은 감시를 낳고, 감시는 일탈자를 찾아내며, 결국 일탈자의 배제와 제거가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됩니다.
악인의 폭력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적에서 나온 폭력은 오랫동안 개혁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사람은 때때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사람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가 더 악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행하는 강제가 선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구한다는 사람들이 사람을 공격할 때
이러한 변화는 종교운동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동물권 운동에서도 선한 목적이 인간에 대한 폭력과 협박으로 변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자는 주장은 정당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도 입법, 구조, 교육과 소비자운동이라는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일부 급진적 동물권 활동가들은 동물을 이용하는 기업과 연구자들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니라 반드시 응징해야 할 가해자로 규정했습니다.
대표적인 조직이 동물해방전선Animal Liberation Front, ALF입니다. ALF는 고정된 지도부와 회원명부가 없는 분산형 지하운동입니다. 누구든 일정한 원칙에 따라 동물시설에 침입하거나 동물을 풀어주고 시설을 파괴한 뒤 ALF의 이름으로 행동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ALF를 국무부의 외국 테러조직처럼 공식 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FBI는 2000년대에 ALF와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 ELF, 그리고 동물실험업체를 공격한 SHAC 운동을 미국의 심각한 국내테러 위협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습니다. FBI는 이들을 일반적인 동물보호운동과 구분하여 ‘특정 쟁점 극단주의special-interest extremism’로 분류했습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모든 동물권 운동을 테러리즘으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리지만, 일부 급진조직과 활동가가 실제로 국내테러 수사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보통 중도적인 동물복지 운동과 구분됩니다. ALF와 그 주변 운동은 국가와 사유재산, 기업활동과 자본주의적 동물 이용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무정부주의 또는 급진좌파 계열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FBI는 이들을 단순히 전통적 좌파 테러조직으로 분류하기보다, 동물권이라는 단일한 도덕적 목표에 집중하는 별도의 극단주의로 다루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대체로 극좌적 세계관을 가졌지만, 모든 진보주의자나 모든 동물권 활동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폭탄으로 동물실험을 막으려 한 사람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2003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연쇄 폭탄사건입니다.
그해 8월 동물실험업체 헌팅던 생명과학과 거래하던 바이오기업 카이론Chiron의 건물에서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첫 폭발이 일어난 뒤 현장에 출동한 사람들을 노린 것으로 의심되는 두 번째 폭탄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한 달 뒤에는 또 다른 관련 기업인 샤클리Shaklee의 건물 앞에서 못을 넣어 살상력을 높인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동물해방여단의 혁명세포Revolutionary Cells of the Animal Liberation Brigade’라는 이름의 조직은 범행을 주장하며 기업뿐 아니라 관계자와 가족까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폭탄의 구조와 배치 방식은 단순한 기물파손이 아니라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공격이었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동물권 극단주의자 대니얼 앤드리어스 샌디에이고는 2009년 FBI의 최우선 테러수배자 명단에 오른 최초의 미국 국내테러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자들이 자신을 잔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동물실험을 중단시키기 위해 기업에 경제적 손실과 공포를 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동물을 죽이는 사람은 가해자이고, 그들을 위협하는 자신은 억압받는 동물을 대신하여 싸우는 해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선한 목적이 생기자, 기업 직원과 가족에게 폭탄을 사용할 수 없다는 평범한 도덕적 한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기업과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확장된 공격
SHAC, 즉 ‘헌팅던 동물학대 중단Stop Huntingdon Animal Cruelty’ 운동은 동물실험업체 헌팅던 생명과학을 폐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공격은 해당 회사의 시설과 경영진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활동가들은 그 회사와 거래하는 금융기관, 보험회사, 운송업체와 직원들까지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직원들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위협하고, 차량과 건물을 훼손하며, 거래를 끊지 않으면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거래기업과 다시 거래하는 기업까지 공격대상이 되는 이른바 2차·3차 표적화가 이루어졌습니다.
2006년 미국 연방법원은 SHAC USA와 활동가 6명에게 동물기업보호법 위반과 인터넷 스토킹 등의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수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단체와 피고인들에게는 약 100만 달러의 배상책임이 부과되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직접 모든 폭력행위를 실행했다기보다, 웹사이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선동하고 확산시켰다는 혐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과도한 기소였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이 사례는 정화운동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의 적은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다음에는 그 회사에 투자하는 은행이 적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보험을 제공하는 회사와 물품을 운반하는 업체가 적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곳에서 일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평범한 사람과 그 가족까지 악에 협력하는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악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을 모두 공범으로 본다면 공격대상은 끝없이 늘어납니다.
도덕적 확신이 폭력의 면허가 될 때
급진적 동물권 운동의 폭력은 동물에 대한 연민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연민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동물의 고통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면, 그 악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에게 특별한 도덕적 권한이 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건물에 불을 지르고, 직원의 집을 찾아가고, 가족을 협박하고, 폭탄을 설치하는 행동도 동물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직접행동으로 재해석됩니다.
평범한 범죄자는 자신이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도덕적 극단주의자는 법보다 더 높은 정의를 집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범죄가 아니라 저항, 파괴가 아니라 해방, 협박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위험해진 것은 동물에게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을 포함한 현실 전체를 하나의 절대적인 도덕 기준에 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구체적인 인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보다 앞섰습니다.
칼뱅주의적 정화와 급진적 동물권 운동은 시대와 목적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두 운동에는 비슷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자신들이 분명한 선을 알고 있다고 믿고, 그 선에 반대하거나 협력하지 않는 사람을 악의 공범으로 규정하며, 마침내 강제와 처벌을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구조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인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절대적인 선을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세일럼에서 악을 찾아낸 사람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재판도 같은 문제를 보여줍니다.
세일럼 사건을 단순히 청교도 신앙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사회의 경제적 갈등, 교회 내부의 분열, 원주민 전쟁에 대한 공포, 정치적 불안, 개인적인 원한과 당시의 마녀 신앙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 공동체의 세계관은 사건이 폭주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단순한 생활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종교공동체로 보았습니다. 공동체의 죄는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마을 전체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질병과 갈등, 전쟁과 불안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 원인을 사회의 복잡한 조건보다 내부에 숨어 있는 악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녀를 찾아내는 일은 미신적인 폭력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는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때 정상적인 증거의 기준도 무너졌습니다. 꿈이나 환영 속에서 피고인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른바 유령증거가 재판에 사용되었고, 고발은 또 다른 고발을 낳았습니다.
마녀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신중한 사람이 아니라 악을 비호하는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발을 멈추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의를 지연시키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세일럼에서는 19명이 교수형을 당했고, 자일스 코리는 재판 절차에 저항하다 압사당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투옥되었고, 공동체는 오랫동안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 사건의 중요한 점은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악인이 되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마와 싸우고 있으며 공동체를 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악을 행한다고 생각할 때보다 절대적인 악을 제거한다고 믿을 때 더 잔혹해질 수 있습니다.
칼뱅주의와 세일럼을 연결하는 것
칼뱅의 제네바와 세일럼 마녀재판을 동일한 사건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제도도 다르며, 사건이 발생한 원인도 다릅니다.
그러나 두 사례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습니다. 세일럼을 단순한 집단 히스테리로만 부르면 이 구조를 놓치게 됩니다. 여러 불안과 갈등이 불씨였다면, 공동체가 악을 식별하고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불씨를 재판과 처형으로 옮긴 사회공학적 태도였습니다.
공동체가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생활방식을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개인의 일탈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악을 방치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공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보다 공동체를 정화하려는 목적이 앞서기 쉽습니다. 증거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처벌을 늦추자는 주장은 비겁함이나 무관심으로 오해받습니다.
그러나 카스텔리오의 태도는 그 반대입니다.
교리가 중요할수록 강제로 믿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가 중요할수록 권력의 오판을 경계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더라도 인간을 제거하는 일에는 주저해야 합니다.
그는 인간을 선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에 관용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오류를 범하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관용을 주장했습니다.
인본주의는 개혁의 반대가 아닙니다
인본주의를 변화에 반대하는 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부당한 제도를 고치고,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잘못된 관습을 바꾸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개혁은 한 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개혁하는 사람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공학자는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좋은 제도를 설계해 사람을 바꾸려 합니다. 인본주의자는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강제의 범위와 속도를 제한하려 합니다.
사회공학자는 선한 목적을 먼저 봅니다. 인본주의자는 그 목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처 입을 구체적인 인간을 먼저 봅니다.
사회공학자는 반대 의견을 변화의 장애물로 보기 쉽습니다. 인본주의자는 반대 의견이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게 하는 마지막 안전장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그가 악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의를 너무 확신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선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칼뱅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고 더 강한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카스텔리오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고 더 강한 규율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세일럼은 그 두 판단의 차이가 실제로 무엇을 낳는지 보여줍니다. 사회공학자가 공동체를 설계하고 정화하려 할 때와 인본주의자가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절차를 방어하려 할 때, 그 차이는 때로 사람의 생명까지 좌우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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