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 가세티는 낡은 정치 보스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세련된 얼굴이었습니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 다문화적 배경을 가졌으며, 도시 행정과 기후정책과 다양성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21세기 민주당이 좋아할 만한 거의 모든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세티는 로스앤젤레스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는 단순한 도시가 아닙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수도이며, 할리우드의 도시이고, 민주당 문화 권력의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따라서 LA 시장이 된다는 것은 행정가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치와 연예, 도시 브랜드와 진보적 이미지가 결합된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세티는 이 무대를 잘 이해한 정치인이었습니다. 2013년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는 배우 살마 하예크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말해주는 영상을 부탁했습니다. 후원 행사에는 윌 페럴, 지미 키멜, 모비 같은 유명 인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의 캠페인은 마이클 아이스너, 제이크 질렌할, 케빈 스페이시, 마이클 오비츠 등을 포함한 “가세티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리더” 명단까지 만들었습니다. LA 정치에서 연예계 인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자본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낡은 기계정치와 다르게 보입니다. 태머니 홀의 정치 보스들은 이민자, 노동조합, 지역 조직, 일자리 배분, 후견 관계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LA식 기계정치는 그렇게 투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타들의 후원 행사, 기후정책, 다양성, 스마트시티, 도시 혁신의 언어를 입고 나타납니다. 낡은 정치기계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면, 새로운 정치기계는 선글라스를 끼고 레드카펫 위에 서 있습니다.
가세티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처럼 대기업과 월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더 실용적이고 더 도시적이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기계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스마트폰 시대”에 맞게 바꾸려는 현대적 진보주의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LA에서 자신이 한 일을 전국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우리는 LA에서 해냈습니다. 이제 우리 전체 국가를 위해 해봅시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에는 야심찬 도시 정치인의 선언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여기에는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과연 LA에서 무엇을 해냈다는 것입니까. LA는 정말로 진보 도시 행정의 성공 모델이었습니까. 아니면 세련된 이미지와 화려한 인맥 뒤에 오래된 도시 정치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까.
가세티의 정치적 매력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 자체를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유대계와 멕시코계 뿌리를 함께 가진 배경을 스스로 “코셔 브리또”라고 표현했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컬럼비아대와 옥스퍼드를 거친 로즈 장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길 가세티는 O.J. 심슨 사건으로 유명한 LA 검사였습니다. 에릭 가세티는 지역 명문가, 엘리트 교육, 다문화 정체성, 진보적 감수성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은 민주당 전국 정치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세티는 한때 전국적 유망주로 거론되었습니다. 기자들은 그를 진보적 업적을 가진 대도시 시장으로 묘사했고, 대도시 시장들이 새로운 진보 정책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그를 주목했습니다.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부통령 후보군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가세티의 사례는 단순한 인물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그는 민주당의 미래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현대 민주당 도시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도덕과 다양성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도시 혁신과 효율적 정부를 말했습니다. 그는 연예계와 시민단체와 비영리조직과 정책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활동한 LA 정치의 핵심에는 오래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동산, 인허가, 기부금, 비영리단체, 정치적 접근권이 얽힌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현대 기계정치의 특징입니다. 기계정치는 반드시 어두운 뒷방에서 현금 봉투를 주고받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기계정치는 훨씬 더 세련된 형태를 취합니다. 기업은 정치인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정치인이 만든 공익기금에 기부합니다. 개발업자는 선거 캠프에 노골적으로 줄을 서지 않습니다. 대신 도시 혁신, 주택 공급, 인프라, 환경 개선이라는 언어를 통해 행정 권력에 접근합니다. 정치인은 기업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비영리단체와 공익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들어오면, 도덕적 거부는 쉽게 우회됩니다.
가세티의 사례를 볼 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악을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입니다. 대도시의 시장과 시의회가 토지의 용도, 건축 제한, 환경규제 예외, 공공 인프라 사업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 권력은 곧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개발업자에게 시청은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수익의 관문입니다. 이때 정치인은 이상을 말하지만, 실제 정치의 중심에는 접근권이 놓입니다.
그래서 가세티는 “LA식 진보 정치의 얼굴”로 보아야 합니다. 그는 낡은 보스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련되고, 진보적이고, 도시적이고,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세련된 이미지 때문에 그의 사례는 더 중요합니다. 낡은 기계정치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계정치는 공익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낡은 기계정치는 일자리와 표를 교환했습니다. 새로운 기계정치는 이미지와 기금과 인허가와 접근권을 교환합니다.
가세티의 정치는 그래서 “레이밴을 쓴 태머니 홀”처럼 보입니다. 겉으로는 할리우드와 스마트시티와 다양성의 정치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오래된 도시 권력의 논리가 작동합니다. 권력은 돈을 부르고, 돈은 접근권을 사고, 접근권은 다시 권력을 강화합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대도시 정치가 권력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지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가세티는 카멀라 해리스와도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해리스가 샌프란시스코 정치 생태계 안에서 성장한 인물이라면, 가세티는 로스앤젤레스 도시 엘리트 정치의 산물입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의 새로운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둘 다 다문화적이고, 세련되고, 전국 정치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둘 다 지역 정치기계가 만들어낸 후보라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냅니다. 정치기계는 사람을 무대 위에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독립적인 정치적 중량감과 전국적 설득력을 부여하지는 못합니다.
에릭 가세티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는 단순히 한 명의 LA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대 대도시 진보 정치가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포장지 아래에서 낡은 기계정치가 얼마나 세련된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