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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비슷하면 집단무의식이 존재하는가


칼 융의 《인간과 상징》은 세계의 신화와 꿈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를 집단무의식과 원형의 증거로 읽습니다. 그러나 신화의 유사성은 공통된 신체와 삶의 조건, 문화적 전파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형이 과학적 발견인지 매혹적인 해석의 언어인지 살펴봅니다.

영화 《서스페리아》를 보고 있으면 칼 융의 심리학이 왜 매력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춤은 의식처럼 보이고 지하 공간은 무의식처럼 느껴집니다. 마녀와 어머니, 죽음과 재생의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신화가 됩니다. 이런 작품을 모성과 그림자, 죄책감과 재생이라는 언어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영화는 사람이 의미를 담아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신화와 종교, 꿈과 예술에서 반복되는 이미지가 단순한 문화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 구조를 드러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집단무의식과 원형입니다.

《인간과 상징》은 이 생각을 일반 독자에게 가장 친절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문제는 신화와 예술을 읽는 매혹적인 방법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발견한 과학적 구조처럼 받아들여졌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를 그럴듯하게 해석하는 것과 마음의 구조를 입증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무의식에서 인류의 무의식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주로 개인이 억압한 욕망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융은 그 아래에 더 깊은 층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이 살아가며 만들어진 무의식 아래에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학습한 지식이나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인류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정신의 구조입니다.

집단무의식은 원형을 통해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머니와 영웅, 그림자와 현자, 탄생과 죽음, 재생과 여행 같은 형상이 서로 멀리 떨어진 문화의 신화와 종교에서 반복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같은 원형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영웅은 집을 떠나 시련을 겪고 돌아옵니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생명을 주고 보호하지만 동시에 삼키고 파괴하는 존재로도 나타납니다.

이런 유사성을 보고 있으면 인간 정신 깊은 곳에 공통된 설계도가 있다는 생각이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신화가 비슷하다는 사실과 집단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신화가 비슷한 더 단순한 이유

서로 다른 문화에서 비슷한 신화가 생기는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먼저 모든 인간은 비슷한 몸과 생애를 가집니다. 아이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고, 성장하면서 가족에게서 독립합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경쟁하며, 병들고 늙고 죽습니다. 밤과 낮, 폭풍과 홍수, 맹수와 질병을 경험합니다.

삶의 기본 조건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생명과 보호의 상징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선천적인 ‘어머니 원형’을 반드시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서 태어나 오랫동안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공통 경험으로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뱀과 어둠, 추락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반응에는 개인의 학습뿐 아니라 인간이 진화하면서 형성한 생물학적 성향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위험에 빠르게 주의를 기울이는 성향과 신화 속에 완성된 ‘뱀 원형’이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문화의 전파도 있습니다.

신화와 종교는 완전히 고립된 곳에서 각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이동하고 전쟁하고 결혼하며, 물건과 기술뿐 아니라 이야기도 교환했습니다. 비슷한 신화가 발견됐다고 해서 그것이 서로 독립적으로 집단무의식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공통된 몸과 발달과정, 비슷한 환경과 생존 문제, 문화적 전파가 신화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다면 집단무의식은 유일한 설명이 아닙니다. 더구나 융은 이 경쟁 설명들을 충분히 배제하지 못했습니다.

원형은 무엇을 예측하는가

과학적 개념은 이미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론이 틀렸다고 판단할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원형은 지나치게 유연합니다.

꿈속의 어머니는 보호와 사랑을 뜻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억압과 구속, 모든 것을 삼키는 자연의 힘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물은 생명과 정화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혼돈과 죽음, 무의식과 위험도 뜻할 수 있습니다. 집은 자아와 정신의 구조이면서 몸과 가족, 안전과 감금의 상징도 됩니다. 숲은 성장과 생명의 장소인 동시에 길을 잃는 무의식의 공간입니다.

어떤 상징이 나타나도 이미 알려진 원형 가운데 하나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나타나면 원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원형이 자료를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가 나온 뒤 거기에 맞는 원형과 의미를 선택합니다.

해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풍부해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결과도 이론을 반박할 수 없다면 그 풍부함은 과학적 설명력과 다른 것입니다.

원형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신화를 분류한 것

융은 세계의 신화와 종교, 꿈과 환상, 연금술 문헌을 폭넓게 비교했습니다. 그의 지식과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인간과 상징》을 읽으면 평범한 꿈과 이미지가 오랜 신화적 전통 속에 놓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수많은 신화 가운데 비슷해 보이는 부분을 선택하고, 차이가 큰 부분은 같은 원형의 다양한 변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웅이 성공하면 영웅 원형이고 실패하면 비극적 영웅 원형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면 어머니 원형이며, 아이를 죽이거나 버리면 어두운 어머니 원형입니다.

이렇게 하면 원형은 거의 모든 신화를 포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형이 인간 정신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류 기준이 충분히 유연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동물을 ‘하늘의 동물’, ‘땅의 동물’, ‘물의 동물’로 나누면 거의 모든 동물을 세 범주 가운데 하나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연 안에 그 분류가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화에서 반복되는 주제를 묶는 개념으로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류가 유용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개념이 인간의 정신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융은 처음부터 비과학적인 인물이었는가

융을 평생 실험과 무관했던 신비주의자라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였고 취리히의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했습니다. 초기에는 단어연상검사를 이용해 자극어에 대한 반응시간과 연상을 조사했습니다. 특정 단어 앞에서 반응이 늦어지거나 감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개인의 콤플렉스를 연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단어연상 실험이 후기의 집단무의식과 원형을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특정 단어에 대한 반응이 느려진다는 사실에서 어머니와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 같은 원형이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초기의 실험적 경력은 후기 이론에 과학적 권위를 더했습니다. 하지만 융의 가장 유명한 개념들은 실험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꿈과 환상, 신화와 종교, 민담과 연금술을 비교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집단무의식이 경험적 가설이라면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학습, 인간의 공통 조건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패턴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가 나오면 집단무의식의 증거가 되고, 다르게 나오면 같은 원형의 다양한 표현이 됩니다. 상징을 알고 있으면 집단무의식의 흔적이고, 알지 못했다고 해도 꿈과 환상에서 간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유사성과 차이가 모두 이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야 집단무의식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집단무의식은 검증 가능한 심리학 이론이라기보다 인간과 신화를 바라보는 철학적 틀에 가깝습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낡은 인간관

융의 원형 가운데 오늘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마와 아니무스입니다.

융은 남성의 무의식에는 여성적인 아니마가 있고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적인 아니무스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원형은 꿈과 관계,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주며 심리적 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기 안의 반대 성향을 인정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읽으면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특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감정과 관계성은 여성적인 것으로, 이성과 판단은 남성적인 것으로 나누기 쉽습니다.

실제 개인의 다양성을 설명하기보다 당시 유럽 사회의 성 역할을 정신의 보편적 구조로 바꾼 셈입니다. 문화가 만든 남녀의 역할을 관찰한 뒤 그것을 집단무의식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융의 심리학은 시대의 편견을 넘어섰다기보다 시대의 편견에 신화적 깊이를 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개성화는 발견인가, 이상적인 삶의 정의인가

융 심리학의 최종 목표는 개성화입니다.

개성화는 의식과 무의식, 밝은 면과 그림자, 남성성과 여성성처럼 대립하는 요소를 통합해 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입니다.

삶의 철학으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성향을 돌아보고, 사회에서 보여주는 페르소나와 실제 감정을 구분하며, 모순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리학적으로 발견한 보편적 발달과정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개성화라는 같은 방향으로 성장하는지, 그 단계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개성화를 이룬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 건강한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융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발견했다기보다 자신이 생각한 성숙한 인간을 심리학의 언어로 정의했을 수 있습니다.

프롬이 사랑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을 정의했던 것처럼, 융도 인간의 성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을 정의했습니다.

의미를 찾는 법과 진실을 확인하는 법

《인간과 상징》은 읽고 나면 인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느낌을 줍니다. 꿈속의 집과 동물, 물과 여행이 더 이상 우연한 이미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와 소설, 종교와 신화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 안에서 연결됩니다.

하지만 연결이 많다고 설명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의미를 찾는 법을 가르치지만 그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융의 해석은 모호한 이미지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깊어 보이는 것과 실제 정신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다릅니다.

《서스페리아》를 융의 원형으로 읽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사람이 의미를 담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꿈과 정신을 영화처럼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영화의 지하실이 무의식을 상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선천적인 ‘지하실 원형’이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영화의 마녀가 어머니의 어두운 얼굴로 읽힌다고 해서 모든 인간의 정신에 같은 어머니 원형이 존재한다고 입증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술적 해석의 성공을 심리학 이론의 증거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융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융의 개념은 문학과 영화, 미술과 종교를 해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림자, 페르소나, 자기와 개성화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는 강력한 은유가 됐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을 ‘그림자’라고 부를 수 있고, 사회에 보여주는 얼굴을 ‘페르소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은유를 실체로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림자라는 말이 인간의 공격적이고 부끄러운 성향을 잘 표현한다고 해서 정신 안에 ‘그림자’라는 독립된 기관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형도 신화와 예술을 비교하는 언어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정신구조라고 주장하려면 별도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융은 그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융은 집단무의식을 발견했다기보다 신화와 꿈을 집단무의식이라는 언어로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을 위해 읽어야 하는가

《인간과 상징》은 융 심리학과 20세기 문화사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현대 영화와 문학, 종교비평에 융의 언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고 싶다면 읽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을 배우거나 자신의 꿈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 먼저 읽을 책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얻게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검증된 지도라기보다 꿈과 신화에서 원형을 찾아내는 해석법입니다.

융은 신화를 심리학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번역은 아름답고 때로는 통찰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석이 과학적 발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상징》은 심리학의 명저라기보다 심리학의 권위를 빌려 쓴 비교신화학과 종교적 인간학의 고전에 가깝습니다.

영화를 읽기에는 좋은 책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과학책으로는 이제 굳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참고문헌

C. G. Jung, ed., Man and His Symbols, Aldus Books, 1964.

C. G. Jung, 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2nd ed., translated by R. F. C. Hull,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C. G. Jung, Experimental Researches, 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Vol. 2,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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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G. Jung, Four Archetypes: Mother, Rebirth, Spirit, Trickst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Anthony Stevens, Archetype Revisited: An Updated Natural History of the Self, Brunner-Routledge, 2002.

Luca Guadagnino, director, Suspiria, Amazon Studio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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