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 문제를 생각하면 흔히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뚜렷할 것처럼 보입니다. 진보는 큰 정부, 복지 확대, 재분배를 지지합니다. 따라서 세금을 더 긍정적으로 볼 것 같습니다. 반대로 보수는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정부 지출 축소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보수가 세금에 더 비판적이고, 탈세에도 더 관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연구를 보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합니다. 보수냐 진보냐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정부를 정당한 정부로 느끼는가, 그리고 정부의 크기가 자신이 바라는 방향과 맞는가입니다.
세금은 단순히 국가에 내는 돈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금을 일종의 심리적 계약으로 받아들입니다. 시민은 세금을 내고, 국가는 그 대가로 치안, 교육, 복지, 의료, 사회질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 계약이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세금을 더 기꺼이 냅니다. 반대로 정부가 내 돈을 낭비한다고 느끼거나, 내가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라를 운영한다고 느끼면 세금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은 약해집니다.
조세 도덕성: 세금을 속이는 것은 얼마나 나쁜 일인가
첫 번째로 볼 연구는 Rodriguez-Justicia와 Theilen의 2023년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1995년부터 2018년까지 23개 OECD 국가의 자료를 이용해 정치 이념과 조세 도덕성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tax morale", 즉 조세 도덕성입니다. 조세 도덕성이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내면적 동기입니다. 세무조사가 무서워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것이 시민으로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정도입니다.
이 연구는 World Values Survey와 European Values Study의 문항을 활용했습니다. 질문은 대략 이렇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세금을 속이는 것은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응답자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에서 “항상 정당화될 수 있다”까지 답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답변을 통해 사람들이 탈세를 얼마나 도덕적으로 용납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자체가 조세 도덕성을 직접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이념이 정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공공부문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고 느끼는지였습니다.
보수 성향 시민은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크다고 느낄 때 조세 도덕성이 낮아졌습니다. 정부가 세금을 너무 많이 걷고,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은 영역에 개입한다고 느끼면 세금을 속이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진보 성향 시민은 공공부문이 너무 작다고 느낄 때 조세 도덕성이 높아졌습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내면적 동기가 강해졌습니다.
이 결과는 흔한 통념을 조금 비틀어 보여줍니다. 보수는 세금 자체를 싫어해서 탈세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는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고 느낄 때 세금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이 약해집니다. 진보는 세금 자체를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는 공공부문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세금을 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세금에 대한 태도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과 실제 정부의 모습이 일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실제 탈세 행동: 자기 편 정부일 때 세금을 더 잘 냅니다
두 번째로 볼 연구는 Cullen, Turner, Washington의 2021년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의 IRS 세금 신고 자료를 이용해 정치적 정렬과 실제 탈세 행동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실제 세금 신고 자료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에게 “탈세가 괜찮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 것과 실제 신고 행동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설문에서는 도덕적인 답을 할 수 있지만, 실제 신고에서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정치적 정렬”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정치적 정렬이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대통령의 정당이 일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공화당 성향 지역에서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그 지역은 대통령과 정렬된 상태입니다. 민주당 성향 지역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상대 정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비정렬 상태가 됩니다.
연구자들은 2000년과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활용했습니다. 2000년에는 민주당 클린턴 정부에서 공화당 부시 정부로 바뀌었습니다. 2008년에는 공화당 부시 정부에서 민주당 오바마 정부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번의 정권 교체를 통해 같은 지역이 어떤 시기에는 대통령과 정렬되고, 어떤 시기에는 비정렬되는 상황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탈세는 불법이므로 직접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몇 가지 대리 지표를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숨기기 쉬운 소득의 신고액입니다. 임금처럼 회사가 이미 보고하고 원천징수하는 소득은 숨기기 어렵습니다. 반면 자영업 소득, 임대소득, 일부 사업소득은 납세자가 스스로 신고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숨길 여지가 큽니다. 만약 정부에 대한 불만이 탈세로 이어진다면, 그 효과는 임금소득이 아니라 숨기기 쉬운 소득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는 의심스러운 "EITC" 청구입니다. "EITC"는 미국의 근로소득세액공제입니다. 저소득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과다 청구와 부정 청구가 자주 발생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영업자가 최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득 구간에 맞춰 소득을 신고하는 현상은 탈세 또는 부정 신고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세무조사와 추가 세금 부과입니다. "IRS"의 세무조사는 신고 내용이 비정상적이거나 누락 가능성이 높을 때 촉발됩니다. 따라서 세무조사 빈도와 조사 후 추가 세금 부과는 탈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간접 지표가 됩니다.
연구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정렬된 지역에서는 탈세로 해석될 수 있는 지표들이 줄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비정렬된 지역에서는 탈세 지표가 늘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결과는 숨기기 쉬운 소득에서 나타났습니다. 정렬 상태에서 벗어난 지역은 임금처럼 잘 포착되는 소득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숨기기 쉬운 소득의 신고액은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경제활동 자체가 줄었다면 임금소득에도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변화는 주로 숨기기 쉬운 소득에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정부에 불만을 느낄 때 세금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숨길 수 있는 영역에서 조용히 덜 신고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 중 누가 더 나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논문을 함께 보면 중요한 결론이 나옵니다.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이 더 탈세 성향이 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첫 번째 논문은 보수 성향 시민이 공공부문이 너무 크다고 느낄 때 조세 도덕성이 낮아진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보수가 본질적으로 더 탈세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보수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기 때문에 정부가 과도하게 커졌다고 느낄 때 세금의 정당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논문은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이 더 탈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어느 정당이냐가 아니라 집권 정부와 정치적으로 정렬되어 있는가입니다. 공화당 성향 지역은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 세금 순응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민주당 성향 지역은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 세금 순응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도덕적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정부를 내 정부로 느끼는가, 아니면 나와 반대되는 권력으로 느끼는가입니다.
세금은 국가에 대한 신뢰의 지표입니다
세금을 내는 행위는 회계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금을 낼 때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누가 그 돈을 집행하는지, 그 정부가 정당한지, 그 제도가 공정한지를 함께 판단합니다.
정부를 신뢰하면 세금은 시민의 의무가 됩니다. 정부를 불신하면 세금은 강제로 빼앗기는 돈처럼 느껴집니다. 이 차이가 세금 순응을 바꿉니다.
물론 세금 순응에는 세무조사, 벌금, 소득 포착률 같은 제도적 요인도 중요합니다. 임금소득처럼 제3자 보고가 강한 소득은 개인의 정치적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작습니다. 그러나 자영업 소득이나 임대소득처럼 신고자의 자율성이 큰 영역에서는 정부에 대한 태도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탈세는 단순한 탐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부 정당성에 대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람들은 세금을 ‘자기 정부’에 냅니다
보수와 진보의 탈세 가능성을 다룬 두 논문은 서로 다른 자료와 방법을 사용했지만,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세금 순응은 단순히 세율이나 처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 정치적 정렬감, 공공부문의 정당성 판단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수는 정부가 너무 커졌다고 느낄 때 세금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진보는 정부가 너무 작고 공공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세금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행동 자료를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세금을 더 성실히 신고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세금을 추상적인 국가에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정부에 냅니다.
세금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금은 시민이 정부를 얼마나 자기 정부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신뢰의 지표입니다.
참고문헌
- Rodriguez-Justicia, D., & Theilen, B. (2023). “Ideological Alignment, Public Sector Size and Tax Morale: Empirical Evidence from OECD Economies.”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10, 519.
- Cullen, J. B., Turner, N., & Washington, E. (2021). “Political Alignment, Attitudes toward Government, and Tax Evasion.” American Economic Journal: Economic Policy, 13(3), 135–166.
- OECD. “Tax Morale.” 조세 도덕성을 강제만이 아닌 자발적 납세의 내재적 동기로 설명하는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