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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범죄를 '내로남불'이라 부르면 안 되는 이유: 권력남용을 위선으로 축소하는 프레임


정치인이 권력남용과 범죄 혐의를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면 법률 위반이 단순한 위선과 진영 간 이중잣대 논란으로 축소됩니다. 정치 범죄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야 하는 이유와 내로남불 프레임의 문제를 분석합니다.

정치 범죄가 내로남불 논란으로 축소되는 과정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이라는 축약어는 대한민국 정치권과 대중 매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나 자기편의 행동은 관대하게 합리화하면서 상대 진영의 유사한 행동은 매섭게 비난하는 이중잣대(double standard)와 위선(hypocrisy)을 꼬집는 데 이보다 입에 붙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인 위선이나 정치권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말로는 유용합니다. 문제는 정치인과 언론이 횡령, 직권남용, 선거 개입, 증거인멸 같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까지 "**내로남불 논란**"이라고 부를 때 발생합니다.

범죄를 설명해야 할 자리에 이 표현이 들어서면 법률 위반은 진영 간 위선 경쟁으로 축소됩니다. 무엇을 저질렀는가보다 누가 더 뻔뻔한가가 앞에 놓이고, 행위의 객관적 성격과 책임은 뒤로 밀려납니다.


1. '로맨스와 불륜'이라는 비유의 치명적 오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문장은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합니다.

즉, 행위 자체에는 차이가 없고 단지 자기 행동에는 '로맨스'라는 미화된 이름을 붙이고, 상대의 행동에는 '불륜'이라는 악의적인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의 화살은 행위의 불법성이나 위험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편견'과 '자기합리화'로 향하게 됩니다.

일상적인 사생활이나 일상 모임에서는 이 구도가 타당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이 지각했을 때는 "교통 체증 때문"이라 핑계 대고, 남이 지각했을 때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경우
  • 자신의 지출은 "소중한 취지"라 부르고 남의 지출은 "사치"라 공격하는 경우

이런 예는 실제로 행위가 비슷하지만 평가 기준만 달라진 전형적인 이중잣대이므로 "내로남불"이라 칭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정치 현장에서 발생하는 권력남용과 부패, 형사적 범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한 사람은 단순한 행정 절차상 실수를 저질렀고, 다른 사람은 국가기관을 동원해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을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은 사적인 부적절 행위를 했고, 다른 사람은 공공의 권력과 예산을 직접 남용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면적 형태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권한의 크기, 고의성, 조직성, 반복성, 국가에 미친 피해 규모에 따라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이 모든 차이를 "내로남불"이라는 네 글자에 뭉뚱그려 넣으면 실제 행위가 가진 객관적 중대성의 차이가 증발합니다. '무엇을 저질렀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주관적 시각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2. 공적 범죄를 사적인 '도덕 문제'로 낮추는 비유

'내로남불'의 원형이 된 표현에는 사생활의 영역인 '불륜'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현재 불륜은 형사처벌보다 민사상 책임과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다뤄집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공적 권력범죄보다 개인 간의 위선과 정서적 이중성을 풍자하는 사적 언어에 가깝습니다.

이 사적 비유를 직권남용, 공금 횡령, 선거 개입, 사법 방해 같은 공적 권력범죄에 덧씌우는 순간, 공적 범죄가 가벼운 사적 도덕 문제로 축소되는 왜곡이 일어납니다.

국가기관의 권력남용조차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단지 다음과 같이 들리게 됩니다.

"자기편이 할 때는 좋게 보고, 남이 할 때는 나쁘게 보는 정치적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권력남용과 법치 파괴는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시각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 권한의 오남용, 실재하는 피해와 책임의 문제입니다. '불륜'이라는 사생활의 언어가 공적 범죄의 구조적 엄중함을 가려버리는 것입니다.


3. 범죄보다 '위선'을 앞세우는 본말전도

정치인이 법을 어기면서 타인에게 법치를 목소리 높여 요구했다면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1. 법과 규범을 위반한 객관적 범죄 행위
  2. 남에게 요구한 기준을 스스로 어긴 주관적 위선

법치주의 사회에서 더 본질적이고 엄중하게 처리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첫 번째인 객관적 범죄 행위입니다.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하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형사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해서 불법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두 번째 문제인 위선만을 부각시킵니다.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본인은 지키지 않았다."

이 프레임은 비판 대상의 위선적 태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지만, 그 결과 정작 어떤 법을 어겼는지, 얼마나 거대한 권력을 남용했는지, 국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행위자는 형사책임을 따져야 할 피의자나 공직자가 아니라, 단지 '일관성이 부족하고 면목이 없는 사람' 정도로 희화화됩니다.


4. '왓어바우티즘'과 '가짜 등가성'의 악용 도구

정치권에서 내로남불 논쟁이 시작되면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물타기 싸움만 남게 됩니다.

  • "당신들은 지난 정권 때 왜 가만히 있었는가?"
  • "너희 진영 사람도 과거에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제기된 현안에 답하는 대신 상대방의 과거 잘못을 끌어들여 책임을 회피하는 수법을 "왓어바우티즘"(whataboutism, 물타기/피장파장의 오류)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비판자가 과거에 이중기준을 적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자의 위선 여부는 현재 제기된 범죄 행위에 대한 방어권이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올바른 법적·이성적 결론은 A의 범죄와 B의 범죄를 각각 엄정하게 조사하여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로남불이라는 언어는 진영 정치와 결합하여 상대의 과거 잘못을 자기편의 현재 죄과를 덮는 정치적 상계(相計)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너희도 저질렀으니 우리 죄도 퉁치고 넘어가자."

여기에는 두 사안이 실제로 같은 성격인지 따지지 않는 "가짜 등가성"(false equivalence)이 작동합니다.

  • 실수로 서류 한 장을 누락한 사안과, 조직적으로 대량의 국정 문서와 증거를 인멸한 사안
  • 개인적인 부적절한 언행과, 공권력을 동원한 민간인 불법 사찰

이 극명한 구조적 차이를 무시하고 "둘 다 문제 덜미가 잡혔다"는 표면적 공통점만으로 같은 선상에 놓은 뒤, 왓어바우티즘을 발동시키는 것입니다.


5. 비판자의 '자격'이 사실의 '진실성'을 압도한다

어떤 부패나 범죄가 고발되었을 때, 고발자가 과거에 얼마나 깨끗했는가는 참고 사항일 뿐 주장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위선자가 폭로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증거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다면, 범죄 행위는 독립적으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로남불 프레임이 작동하면 검증의 대상이 기괴하게 바뀝니다.

"피의자가 실제로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가?"
"비판자가 저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법정에 서야 할 범죄 피의자는 뒤로 빠지고, 문제를 제기한 비판자가 심판대 위로 올라갑니다. 비판자의 과거 이중잣대가 확인되는 순간, 피의자가 저지른 실재하는 공적 범죄마저 무효화된 것 같은 착각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법과 정의는 말하는 사람의 도덕적 인격에 따라 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로남불이라는 개념은 이 당연한 명제를 마비시킵니다.


결론: 내로남불은 범죄의 이름이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짧고 강렬하며, 일상적인 이중잣대를 드러내는 데 유용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이 범죄 혐의를 설명하는 대신 이 말을 앞세우면 그 직관성이 오히려 책임을 흐리는 도구가 됩니다.

이 용어는 범죄를 위선으로 바꾸고, 행위의 객관적 중대성을 주관적 시각의 싸움으로 치환하며, 권력남용의 책임을 '진영 간 태도 문제'로 가려버립니다. 서로 다른 두 사안을 가짜 등가성으로 묶어버리고, 피장파장의 왓어바우티즘으로 법적 책임성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듭니다.

정치와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 왜곡된 유행어 뒤에 숨는 것을 멈추고, 사건에 정확한 법률적·객관적 이름부터 붙여야 합니다.

  • 횡령이라면 횡령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직권남용이라면 직권남용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증거인멸이라면 증거인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이해충돌이라면 이해충돌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정확한 행위의 이름을 붙여 범죄의 객관적 성격과 무게를 밝혀낸 이후에야 비로소 "이 동일한 기준이 상대편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 모든 공적 범죄를 '내로남불'이라는 도덕적 희화화의 틀에 가두는 한, 정치는 객관적 사실과 법치가 사라진 진영 간의 주관적 비난전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우리 편인가 상대 편인가", "그가 관대한 시각을 가졌는가"를 묻기 전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무슨 행위를 저질렀는가?"

내로남불은 쓸모없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범죄의 이름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행위의 불법성과 책임을 먼저 규명하고, 동일한 기준이 상대편에도 적용되었는지는 그다음에 따져야 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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