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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과 혐오 ②] 절차적 정의는 왜 혐오받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무죄추정, 입증책임, 위법수집증거 배제, 방어권은 범죄자를 편드는 장치가 아니라 국가의 처벌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입니다.

[사법과 혐오 ②] 절차적 정의는 왜 혐오받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절차는 결백을 미리 선언하는 장치가 아니라, 국가가 처벌의 근거를 증명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범죄 피해가 크고 피고인에 대한 반감이 강할수록 절차를 지키자는 말은 차갑게 들립니다. 증거 능력을 따지고, 영장의 범위를 묻고, 피고인의 반박 기회를 보장하면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차적 정의는 실체적 진실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진실로 인정할 것인지, 국가가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증명할 것인지에 관한 규칙입니다.

1. 무죄추정은 인품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무죄추정은 피고인이 실제로 무죄라고 믿으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국가가 그를 유죄인 사람처럼 다루지 말라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와 개인의 힘이 대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수사기관, 압수수색, 구금, 기소와 같은 강제력을 가집니다. 개인에게는 그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처벌을 원하는 국가가 먼저 혐의와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2. 입증책임은 권력의 방향을 정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하며, 범죄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정합니다.

이 기준은 모든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제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는데도 분위기와 직관만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질문책임을 지는 쪽
범죄가 발생했는가검사
피고인이 그 행위를 했는가검사
구성요건과 책임이 인정되는가검사
피고인이 모든 의심에 대해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가아니다

이 원칙이 뒤집히면 수사는 혐의를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피고인이 끝없이 자신을 해명해야 하는 과정이 됩니다.

3. 위법수집증거 배제는 진실을 포기하는 규칙이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합니다. 이 원칙은 범죄자를 위한 특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 질문은 한 사건의 유죄 여부를 넘어섭니다.

국가가 유죄라고 확신하면 법을 어겨도 되는가?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경찰은 살인 혐의자의 집 안에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영장을 받을 시간도 있고 긴급 압수에 해당할 사정도 없지만, 곧바로 집에 들어가 흉기를 찾아냅니다. 그 흉기가 범행을 강하게 뒷받침한다면 많은 사람은 일단 증거로 쓰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허용되는 규칙은 “수사기관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면 법원의 사전 통제 없이 주거에 들어갈 수 있다”가 됩니다. 문제는 흉기가 진짜인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의 확신이 영장을 대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이 틀렸을 때 누가 국가를 멈출 수 있는가까지 포함합니다.

그 답을 예라고 하면 수사기관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믿는 순간 수단의 한계를 잃습니다. 영장의 범위, 변호인의 조력, 진술거부권, 압수 절차는 진실 발견을 방해하는 장벽이 아니라 국가의 확신을 법 아래 두는 장치입니다.

물론 모든 절차상 하자가 곧바로 모든 증거의 배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위반의 내용과 정도, 수집 과정, 기본권 침해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마음에 드는지에 따라 규칙을 바꾸지 않는 일입니다.

이 원칙은 실제 판례에서도 구체화되었습니다. 대법원은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물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판단할 때 절차 위반의 내용과 정도, 침해된 권리,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종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는 진실을 외면하는 자동 공식이 아니라 적법절차와 실체적 진실 사이의 기준을 세우는 법리입니다.

디지털 증거에서는 통제가 더 중요합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에는 혐의와 무관한 개인의 생활 전체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2011모1839 전원합의체 결정은 전자정보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영장에 적힌 혐의와 관련된 정보로 제한하고, 저장매체를 반출해 탐색할 때도 당사자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의 혐의가 한 사람의 디지털 생활 전체를 들여다볼 허가증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4. 방어권은 재판을 검증 가능한 절차로 만든다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증거를 열람하고, 증인을 반대신문하고, 자신의 주장을 낼 기회를 주는 이유는 단순한 예우가 아닙니다. 검사의 주장도 반박을 견뎌야만 더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박 없는 주장은 빠르게 확신을 얻습니다. 그러나 빠른 확신과 정확한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방어권은 판결을 늦추는 비용인 동시에 오판을 줄이는 검증 비용입니다.

5. 절차는 유죄인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절차는 무고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말이 불편한 이유는 절차의 가치를 결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죄인 사람에게는 위법한 수사를 허용하고 무죄인 사람에게만 적법한 수사를 허용하자는 규칙은 작동할 수 없습니다. 수사와 재판이 시작될 때는 누가 실제 범인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운 사람에게 허용한 예외는 내일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절차는 피고인의 호감도에 따라 켜고 끄는 장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은 국가를 보장하는 규칙입니다.

6.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는 긴장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절차만 지키면 언제나 정의로운 결과가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증거가 사라지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실제 범죄를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진실 규명만을 앞세우면 강압 수사와 무제한 압수, 끝없는 재수사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한쪽의 폐기가 아니라 긴장의 관리입니다.

  • 수사는 충분히 강력해야 한다.
  • 강제수사는 법률과 영장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 범죄사실은 충분히 높은 기준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반박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 판결과 수사의 오류를 고칠 절차가 열려 있어야 한다.

결론

국가에는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이 필요합니다. 절차는 그 칼을 무디게 만드는 장치가 아닙니다. 칼날이 법이 정한 방향과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씌우는 칼집입니다.

그 칼집은 혐오받는 사람의 도덕성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확신이 영장과 증명, 반박의 기회를 대신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통제가 사라질 때 재수사가 어떻게 사람을 먼저 정해 놓고 범죄를 찾는 표적 수사로 기울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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