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과 혐오 ①] 사회가 피고인을 혐오하면 재판은 어떻게 변질되는가](/_next/image?url=%2Fimages%2Fhow-disgust-distorts-trials.png&w=3840&q=75)
재판은 증거를 검토하고, 사실을 인정한 뒤, 법률을 적용하는 절차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먼저 피고인을 혐오하기 시작하면 이 순서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결론이 먼저 정해지고, 증거는 그 결론을 확인하는 재료가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혐오는 심리학의 좁은 의미인 역겨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분노, 집단적 적대, 경멸이 뒤섞여 어떤 사람을 공동체에서 제거해야 할 오염원처럼 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감정들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분노는 처벌을, 혐오는 회피와 배제를 더 강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둘이 쉽게 결합합니다.
1. 행위에 대한 비판이 사람 전체에 대한 판정으로 바뀐다
정상적인 판단은 구체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 어떤 행위를 했는가
- 그 행위가 법률상 범죄에 해당하는가
- 그 사실을 믿을 만한 증거가 있는가
혐오가 개입하면 질문은 달라집니다.
-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 아닌가
- 저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만으로 의심할 수 있지 않은가
- 처벌하지 않으면 사회가 더럽혀지는 것 아닌가
이때 피고인은 특정 행위를 심판받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하고 불결한 유형의 대표자가 됩니다. 그러면 유죄는 증명해야 할 결론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는 전제가 됩니다.
2. 여론재판은 증거를 보기 전에 서사를 완성한다
보도와 논평, 짧은 영상, 반복되는 표정과 자막은 정식 재판보다 먼저 하나의 서사를 만듭니다. 피고인의 모든 행동은 그 서사에 맞게 해석됩니다.
| 행동 | 혐오가 개입한 해석 |
|---|---|
| 침묵한다 | 찔리는 것이 있다 |
| 적극 해명한다 | 변명이 많다 |
| 웃는다 | 반성하지 않는다 |
| 운다 | 동정심을 유도한다 |
| 일관되게 부인한다 | 뻔뻔하다 |
어떤 반응도 결백의 가능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그 판단은 사실상 반증 불가능합니다. 합리적인 가설은 틀렸음을 보여줄 조건을 가져야 합니다. 혐오의 서사는 그 출구를 닫습니다.
재판 전 보도가 배심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축적되어 있습니다. 2022년 메타분석은 45개 연구 보고서에서 추출한 77개 효과크기와 참가자 1만 1,240명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전 보도는 개인 배심원의 유죄 판단을 높였고(r=.16), 배심단 단위의 판단에서도 더 큰 관련성(r=.35)이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전체 효과를 크지 않지만 일관된 편향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수치를 한국 재판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재판 구조가 영미식 배심제와 같지 않고, 연구도 주로 모의재판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전 서사가 법정에 제출된 증거의 해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로는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판사의 속마음을 추측하는 일이 아니라, 제도가 이런 압력에 견딜 장치를 갖추는 일입니다.
3. 입증책임이 피고인에게 넘어간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증명할 책임은 국가에 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혐오가 강해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떳떳하다면 왜 결백을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하는가?
이 요구는 대개 충족할 수 없습니다.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기는, 일어난 일을 증명하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알리바이처럼 적극적인 반증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모든 의심에 대해 부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무죄추정은 피고인이 선량하다고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국가가 처벌하려면 국가가 먼저 증명하라는 권력 배분의 원칙입니다.
4. 혐오는 증거의 무게까지 바꾼다
혐오하는 사람에게 불리한 자료는 크게 보이고, 유리한 자료는 작게 보입니다. 같은 진술의 모순도 누구의 편인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편견이 나쁘다는 도덕론이 아닙니다. 판단 과정의 오류입니다.
- 먼저 유죄라는 결론을 세운다.
- 그 결론과 맞는 자료를 더 쉽게 기억한다.
- 맞지 않는 자료에는 더 높은 증명 기준을 요구한다.
- 남은 의심 자체를 유죄의 징표로 해석한다.
이 순환이 완성되면 증거는 결론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보호합니다.
5. 혐오는 가장 저렴한 정치적 해결책이 된다
사회적 위기에는 원인이 많습니다. 제도의 실패, 지도층의 무능, 경제적 불안, 집단 간 갈등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원인을 분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악의 상징으로 만드는 편이 쉽습니다.
이때 혐오는 단순한 감정의 실패를 넘어 정치적 기능을 가집니다. 대중은 복잡한 불안에 하나의 이름을 붙여 심리적 질서를 얻고, 지도층은 구조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한 사람에게 이전하며, 언론과 정치 활동가는 선명한 적을 통해 관심과 지지를 모읍니다. 누군가가 이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하지 않아도 각자의 유인이 맞아떨어지면 희생양 만들기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제도를 고치려면 원인을 조사하고 비용을 부담하며 효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 사람을 제거하는 데에는 그런 인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혐오는 불안한 대중과 책임을 피하려는 지도층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해결책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처벌은 구체적인 책임을 묻는 행위에서 공동체의 불안을 배출하는 의식으로 변합니다. 실제 범죄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문제는 무엇을 했는지를 입증하는 대신 누구를 미워하는지로 책임의 크기를 정할 때입니다.
6. 혐오받는 사람에게도 같은 절차가 필요한 이유
절차는 호감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피고인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다음 질문은 끝까지 남아야 합니다.
- 혐의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었는가
- 증거는 적법하게 수집되었는가
- 반대 증거도 같은 기준으로 검토했는가
-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는가
-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반박 기회가 있었는가
법치주의는 좋은 사람만 보호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국가가 누구를 미워하든 같은 방식으로 증명하고 처벌하도록 묶어 두는 제도입니다.
결론
혐오가 재판을 망치는 핵심 방식은 감정을 강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판단의 순서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행위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사람을 먼저 규정하고 모든 행위를 그 규정에 맞춰 해석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유죄추정은 여론에 머물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이 여론의 확신을 따라 압수수색과 구금 같은 강제력을 넓히는 순간 실제 권력의 문제가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무죄추정과 입증책임, 영장주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방어권이 이런 압력 앞에서 어떻게 제도적 방어선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