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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와 낸시 펠로시: 지역 기반 정치가가 위험한 이유


버락 오바마의 시카고와 낸시 펠로시의 샌프란시스코처럼 일당 우위 진보 도시의 정치기계에서 성장한 정치가들의 폐쇄적 이념 관리와 도덕주의 전국화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전국정치의 민주주의 가치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분석합니다.

지역 기반 정치가가 위험한 이유

정치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지역에서 출발합니다. 지역 기반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특정 지역이 오랫동안 한 정당이나 한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되고, 그 안에서 공천권, 후원자, 노조, 시민단체, 지역 언론, 관료조직, 지역 엘리트가 서로 얽힌 폐쇄적 권력망을 형성할 때입니다. 이런 구조를 흔히 정치기계라고 부릅니다.

정치기계는 단순한 정당 조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거, 돈, 조직, 여론, 행정권, 지역 명망가가 결합된 권력 생태계입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거도 있고, 토론도 있고, 시민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가 유권자 전체를 설득하느냐보다, 누가 내부 네트워크의 인정을 받느냐가 더 중요해집니다.

고전적 정치기계가 표와 일자리, 공천과 후원을 직접 교환했다면 현대의 정치기계는 더 넓고 느슨하게 작동합니다. 정당과 후원자, 정책연구기관과 재단, 시민단체와 언론, 행정부와 법률조직이 정책 생산과 여론 형성, 규제와 소송을 나누어 맡습니다. 하나의 보스가 모든 조직에 명령하지 않아도 같은 이념과 이해관계, 인적 네트워크가 각 기관의 행동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인 주변의 모든 인맥과 우호적 기관을 정치기계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단순한 친분을 넘어 자원과 공천, 정책 정보와 여론의 문을 통제하고, 내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사람의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정치기계라는 말이 설명력을 갖습니다. 지역의 폐쇄적 정치기계는 이런 권력 사용법을 배우는 훈련장이며, 현대의 전국적 제도 네트워크는 그것을 더 큰 규모로 확장하는 수단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정치인은 전국정치에 올라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반대편을 설득하기보다 압박하고, 정책 경쟁보다 도덕적 규정을 앞세우며, 공개 토론보다 조직과 제도를 동원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지역 정치기계는 정치인을 유능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독단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클린턴은 왜 다른 유형인가

빌 클린턴도 지역 기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지역 기반은 아칸소라는 지역이었고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의 지역 기반은 오바마의 시카고나 낸시 펠로시의 샌프란시스코와 달랐습니다. 아칸소는 진보 도시가 아니라 보수적 남부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민주당 정치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진보 활동가만 만족시켜서는 안 되었습니다. 남부 백인, 흑인 유권자, 기업인, 노동자, 교회 문화권, 중도층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을 정치기계 밖에서 개인기만으로 살아남은 정치인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민주당지도자회의(DLC)는 클린턴 이전인 1985년에 출범했지만, 클린턴은 이 조직의 핵심 인사이자 의장을 지냈고 ‘뉴 민주당’ 노선을 전국적 집권 전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노동조합·전통적 진보 연합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 후원자와 정책 전문가, 중도 성향 유권자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당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클린턴은 머신이 없었던 정치인이 아니라 머신 개조형 정치인이었습니다. 다만 그가 만든 것은 시카고식 일당 우위 지역 머신과 달랐습니다. 경쟁적인 남부 정치에서 배운 타협과 거래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후원·정책 연합을 중도 방향으로 다시 조립한 전국 네트워크였습니다.

그래서 클린턴은 독단적 이념 정치인이라기보다 거래형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제는 성추문과 사생활, 돈과 후원자, 접근권 논란처럼 개인적이고 거래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실용주의였고,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였습니다. 그는 머신을 개조했지만 상대를 도덕적으로 제거하기보다 타협하고 거래하며 세력을 넓혔습니다. 이 점에서 도덕적 언어를 규제와 제도권력에 결합한 오바마와 달랐습니다.

바이든은 가족 네트워크형 정치인입니다

조 바이든은 또 다른 유형입니다. 그는 시카고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강한 도시 정치기계의 설계자는 아니었지만, 정치기계와 거리가 먼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델라웨어를 36년 동안 대표하면서 지역 정치인과 흑인 공동체 지도자, 상원 동료와 정당 주류 사이에 오랜 관계망을 쌓았습니다. 그의 기반은 하나의 폐쇄적 도시 머신보다 지역 기반과 워싱턴 인맥, 상원 네트워크, 외교·금융·로비 세계를 잇는 중개 능력에 있었습니다.

2020년 민주당 경선은 이 정치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반 경선에서 부진했던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지도자 제임스 클리번의 지지를 받은 뒤 흑인 유권자의 강한 지지를 결집했고, 당내 중도 후보와 주요 인사들의 지지를 연이어 끌어냈습니다. 클리번은 바이든의 델라웨어 로컬 머신에 속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이든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지역 지도자·의회·당 주류의 관계망을 결정적인 순간에 연결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따라서 바이든은 구조에 얹혀 살아온 수동적 정치인이라기보다 기성 네트워크의 중개자이자 수혜자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의 위험은 오바마식 규범 권력이나 펠로시식 진영 장악과 다릅니다. 가족과 측근이 “바이든”이라는 이름과 접근 가능성을 이용할 수 있었고, 오래된 관계가 능력과 책임의 검증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지역기반 정치인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전형적인 지역 기반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는 뉴욕 출신이고 뉴욕 부동산·미디어 세계에서 성장했지만, 뉴욕 정치기계의 산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화당 지역조직을 타고 성장하지 않았고, 공천권자나 지역 보스의 후원을 받아 정치인이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트럼프의 기반은 지역 조직이 아니라 전국적 미디어 인지도, 브랜드, 대중적 분노, 반엘리트 정서였습니다. 그는 정당조직 바깥에서 등장했고, 기존 공화당 엘리트와도 충돌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지역 기반 정치인의 반대 사례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트럼프의 위험은 오바마나 펠로시와 다릅니다. 오바마와 펠로시의 위험이 닫힌 지역 정치기계가 만든 제도적 독단성이라면, 트럼프의 위험은 정당과 관료조직 바깥에서 등장한 개인 권력형 포퓰리즘입니다. 그는 조직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기보다 대중과 직접 연결되려 했고, 언론·관료·정당 엘리트를 우회하려 했습니다.

트럼프는 정치기계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기계에 대한 반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위험은 제도적 폐쇄성이 아니라 제도 불신과 개인적 동원력에서 나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 정치기계의 산물입니다

이제 오바마를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은 시카고였습니다. 시카고는 오래된 민주당 기계정치의 도시였고, 동시에 지역사회 운동과 좌파 활동가 정치의 전통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시장, 지역 조직, 노조, 흑인 정치세력, 시민단체, 재계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정치는 단순한 선거운동이 아닙니다. 누구를 도덕적으로 규정할 것인지, 어떤 명분을 만들 것인지, 어떤 조직을 움직일 것인지, 어떤 기관을 통해 압박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오바마는 이 환경에서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했고, 이후 정치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바마가 배운 것은 단순한 진보 이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대를 도덕적으로 규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은행은 차별의 상징이 될 수 있고, 기업은 약자 착취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산업은 공익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규정되면, 상대는 정책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혐의를 방어해야 하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 방식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반복되었습니다. 영리대학은 학생을 착취하는 산업으로 규정되었고, 소액대출 산업은 약자를 해치는 금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정부는 학생 보호, 소비자 보호, 공익이라는 언어로 산업을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권력의 방향을 아는 자본과 인맥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바마식 권력의 무서운 점은 강압이 강압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규제는 정의처럼 보이고, 압박은 공익처럼 보이며,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는 약자 보호처럼 보입니다.

펠로시는 샌프란시스코식 진영관리 정치인입니다

낸시 펠로시는 샌프란시스코 정치의 산물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진보주의의 상징적 도시입니다. 다양성, 인권, 환경, 성소수자 권리, 사회정의의 언어가 강한 지역입니다. 이런 가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지역의 도덕적 언어가 오랫동안 정치권력을 독점하면, 그 언어는 토론의 도구가 아니라 배제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펠로시의 정치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지역 정치인이 아니라 민주당 하원을 장악한 역사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상대 진영을 설득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자기 진영을 묶고, 의제를 통제하고, 반대자를 밀어붙이는 능력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식 정치의 위험은 도덕적 확신입니다. 자기 지역에서는 당연한 말이 전국에서는 논쟁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당 우위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은 정치인은 자기 지역의 상식을 전국의 상식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반대자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시대에 뒤처진 사람, 혐오하는 사람, 교정되어야 할 사람이 됩니다.

펠로시는 오바마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공유합니다. 둘 다 경쟁이 약한 진보 지역 정치문화에서 성장했고, 자기 진영의 도덕언어를 전국정치의 언어로 가져왔습니다. 오바마가 행정권과 규제권을 통해 움직였다면, 펠로시는 의회 조직과 진영 결속을 통해 움직였습니다.

문제는 정치기계입니다.

정치기계가 위험한 이유는 선거를 없애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거는 계속 있습니다. 문제는 경쟁의 방향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상대 정당과 유권자를 설득하는 경쟁보다, 같은 진영 내부의 조직과 후원자를 장악하는 경쟁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치인이 온건해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더 순수한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활동가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지역 언론과 후원자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책은 현실보다 상징이 중요해지고, 타협은 배신처럼 보이며, 반대편은 설득 대상이 아니라 제거 대상처럼 보입니다.

지역 정치기계는 정치인을 유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조직을 움직일 줄 알고, 돈을 모을 줄 알고, 언론을 다룰 줄 알고, 기관을 압박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전국정치에서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에서 통했던 도덕적 압박 방식을 국가 전체에 적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정치기계는 이 능력을 기관 사이의 분업으로 확장합니다. 정책연구기관이 의제를 만들고, 재단과 시민단체가 정당성을 부여하며, 언론이 도덕적 서사를 확산하고, 행정부와 법률조직이 규제와 소송으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언제나 하나의 지휘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인재와 자금, 언어와 정책 목표를 공유하면 명시적인 명령 없이도 하나의 연합체처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신의 내부 결속이 선거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민주당 주류와 정책 전문가, 주요 후원자와 언론 엘리트의 폭넓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네트워크의 언어는 생활의 불안과 지역의 쇠퇴를 말하던 유권자의 언어와 멀어졌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했습니다. 강한 머신은 내부의 승인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지만, 바로 그 힘 때문에 외부 유권자와의 단절을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기계는 왜 독단을 낳는가

최근 미국 대통령들을 비교하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클린턴은 거래형 정치인입니다. 그의 문제는 돈, 욕망, 후원자, 접근권이었습니다. 바이든은 가족 네트워크형 정치인입니다. 그의 문제는 오랜 워싱턴 인맥과 가족 비즈니스, 이름값의 활용입니다. 트럼프는 미디어 포퓰리스트입니다. 그의 문제는 정당과 관료조직 바깥에서 대중과 직접 결합하는 개인 권력형 정치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머신과 무관한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클린턴은 민주당의 중도 후원·정책 연합을 개조했고, 바이든은 지역 지도자와 의회·정당 주류의 오래된 관계망을 중개했습니다. 차이는 머신의 유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맡은 역할과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오바마는 다릅니다. 그는 규범형 제도권력 정치인입니다. 그는 도덕적 언어를 제도와 결합하는 데 능했습니다. 공익, 약자 보호, 소비자 보호, 학생 보호, 국제규범, 국가안보 같은 말은 모두 선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국가권력과 결합하면, 상대를 압박하고 산업을 재편하며 정치적 적을 포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지역 기반 정치가의 위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오바마입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배운 도덕적 압박정치를 백악관의 행정권, 규제권, 정보권력과 결합시켰습니다. 펠로시는 같은 유형의 의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식 진보 도덕주의가 민주당 하원 조직 장악력과 결합한 사례입니다.

클린턴의 문제는 성추문과 돈, 후원자와 접근권처럼 비교적 눈에 잘 보였습니다. 반면 오바마는 깨끗하고 지적이며 도덕적인 이미지를 가졌고, 바로 그 이미지 때문에 권력 사용이 공익으로 정당화되기 쉬웠습니다. 클린턴의 부패에서는 돈 냄새가 났지만 오바마식 권력은 도덕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결론: 닫힌 지역정치는 전국정치를 망칩니다

지역 기반 정치가 위험한 이유는 지역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위험한 것은 닫힌 지역정치입니다. 한 정당이 오래 지배하고, 정치기계가 공천과 후원과 조직과 언론을 장악하면, 정치인은 유권자 전체보다 내부 네트워크에 더 민감해집니다.

클린턴은 보수적 아칸소에서 타협과 거래를 배운 뒤 민주당의 전국 중도 네트워크를 개조했습니다. 바이든은 작은 주와 워싱턴 상원에서 쌓은 관계를 필요할 때 연결하는 기성 네트워크의 중개자였습니다. 트럼프는 지역 정치기계 바깥에서 등장해 정당 엘리트를 우회하는 개인적 미디어 동원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오바마와 펠로시는 경쟁이 약한 일당 우위 지역정치의 산물입니다. 오바마의 시카고와 펠로시의 샌프란시스코는 모두 강한 진보적 도덕언어와 폐쇄적 권력 네트워크를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치인은 상대를 설득하는 법보다 자기 진영의 도덕언어를 권력으로 바꾸는 법을 배웁니다.

이것이 지역 기반 정치가 위험한 이유입니다. 정치기계는 정치인을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독단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독단이 전국정치로 올라오면, 정책 경쟁은 도덕전쟁으로 바뀝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부패한 거래꾼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 정치기계의 산물도 위험합니다. 그는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공익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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