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은 인간과 사회의 결과입니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을 권위주의, 경쟁, 물질주의와 자기검열이 지배해 온 병든 사회로 묘사합니다.
그의 진단이 맞다면 한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병든 사회가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을 여러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만들어냈습니까?
한국의 성공을 반도체 기업 몇 곳의 우연한 성공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전자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철강, 조선, 배터리와 디지털 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형성했습니다. OECD는 한국을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의 세계적 강국으로 평가하며, 전자·자동차·철강·조선과 디지털경제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합니다.
2024년 한국의 상품 수출액은 약 6,831억 달러였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도 아니고,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국가도 아닌 한국이 세계시장에 이 정도 규모의 상품을 지속해서 판매한다는 것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반도체는 물질주의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반도체"는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과학교육과 공학교육, 숙련된 기술자, 대규모 설비투자,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정밀한 품질관리, 수많은 협력업체와 장기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합니다.
OECD도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에는 막대한 투자만이 아니라 숙련인력, 견고한 기반시설, 과학·기술·공학·수학교육과 산학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도체 성공은 단순한 기업의 탐욕이나 노동자의 희생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수십 년간 지식을 축적한 연구자와 기술자, 복잡한 조직을 운영한 관리자, 생산공정을 개선한 노동자, 교육에 투자한 가정과 국가가 있습니다.
산업은 기계가 혼자 만든 결과가 아닙니다.
산업은 인간의 지식과 협력, 인내와 조직능력이 물질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런데 김누리 교수는 산업적 성취를 인간적 성취와 거의 분리해 버립니다. 독일인의 난민수용에서는 시민의 성숙함을 발견하지만, 한국인의 반도체 생산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협력을 발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구분입니다.
한국의 성취는 한 산업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의 성과가 반도체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특정 기업이나 시대의 우연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여러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높은 성과를 냈습니다.
조선에서는 대형 상선과 고부가가치 선박을 생산합니다. 자동차와 배터리에서는 세계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철강과 전자산업에서도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했습니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자체 기술과 제조능력을 축적하고 해외에 기술을 수출해 왔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국이 원자력 분야에서 기술적 지식과 제조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관련 기술을 폭넓게 수출한다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산업에서 성과가 반복된다면 공통된 사회적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 빠른 학습능력
- 높은 교육열
- 장기적인 투자
- 조직 내부의 협력
- 생산현장의 개선능력
-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
- 세계시장에 대한 민감성
이 가운데 일부는 김누리 교수가 비판하는 한국의 경쟁문화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쟁은 사람을 지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경쟁이 기술학습과 산업발전을 촉진한 측면도 있습니다.
강한 조직문화는 개인을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대규모 생산을 빠르게 조직하는 능력도 만들었습니다.
교육열은 사교육과 입시부담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농업사회에서 대규모 기술인력을 길러낸 힘이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문화는 비용과 기능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비용만 보고 기능을 보지 않는 것은 사회를 설명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한국은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은 오랜 산업화의 역사와 축적된 기술, 자본, 대학과 연구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며 주변의 고소득 시장과 육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조건은 달랐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었고 국토는 분단되었습니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은 작았습니다. 육상으로 대륙과 연결되는 길은 북한에 막혀 있습니다. 에너지의 상당 부분도 해외 수입에 의존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국의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구조라고 평가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한국은 제조업이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세계은행 자료에서 2025년 한국의 "**제조업**"이 국내총생산의 약 27%에 해당합니다.
독일의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훨씬 불리한 출발조건에서 독일과 경쟁하는 산업국가를 만든 한국을 단순히 후진적이고 병든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산업적 성공은 곧 인본주의인가
여기서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산업이 발전했다고 사회가 인간적인 것은 아니라는 반론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공장을 많이 짓고 수출을 많이 한다고 자동으로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성장 과정에서 노동착취와 환경오염, 장시간 노동과 권위주의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오류도 경계해야 합니다.
"산업적 성공"이 인간의 성취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산업은 사람에게 의료기술, 안전한 주택, 교통, 통신, 일자리와 생활의 편의를 제공합니다. 생산성이 높아져야 사회가 교육·의료·복지에 사용할 자원도 생깁니다.
한국의 "**산업화**"는 비용을 만들었지만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 물질적 기반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산업화를 이렇게 평가해야 합니다.
정치적 억압은 비판해야 합니다. 노동과 환경의 비용도 따져야 합니다. 동시에 산업화가 만들어낸 지식, 생활수준과 사회적 능력도 인정해야 합니다.
성과를 인정한다고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비판한다고 성과까지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김누리 교수의 이론은 한국의 성공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김누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경쟁은 병리이고, 교육열은 서열주의이며, 산업화는 물질주의이고, 조직의 위계는 권위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적 산업을 만들어낸 원인은 무엇입니까?
한국인의 지식과 노력, 조직능력과 기술학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산업적 결과를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순환에 빠집니다.
한국이 산업적으로 실패하면 병든 사회의 증거입니다.
한국이 산업적으로 성공하면 물질주의가 심한 사회의 증거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한국은 병든 사회로 남습니다.
이것은 "**반증 가능한**" 설명이 아닙니다.
현실을 관찰한 뒤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결론에 맞추어 현실의 의미를 다시 정의한 것입니다.
한국인의 성공을 물질주의로만 부를 수 있는가
반도체를 만든 사람도 한국인입니다.
조선소에서 배를 만든 사람도 한국인입니다.
자동차와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킨 사람도 한국인입니다.
이들의 성취를 모두 자본과 물질주의의 산물로만 부른다면, 김누리 교수가 말하는 인간성은 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책상에서 권위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적이고, 생산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축적하는 것은 물질적인 일입니까?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시위는 시민적 성숙이고, 세계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인간적 성취가 아닙니까?
이런 구분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회는 말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만들고, 이동과 통신을 가능하게 하며, 안전한 생활을 위한 기술을 생산하는 일도 인간을 위한 활동입니다.
생산은 인간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한국의 성공은 완성의 증거가 아닙니다
한국의 산업적 성공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은 저출산, 수도권 집중,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인빈곤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적 성공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비판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이 실패한 사회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미 이룬 성취를 토대로 다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비평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설명합니다.
성공은 보지 않고 실패만 나열하는 것은 비평이 아닙니다.
진짜 질문
김누리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한국이 독일보다 무조건 우수하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권위주의, 물질주의와 경쟁만으로 이루어진 병든 사회가 어떻게 여러 산업에서 세계적 성과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의 한국사회론은 한국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부분만 골라낸 도덕적 판정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산업적 성취가 곧 인간성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세계적 산업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 사회를 인간적 능력과 장점이 없는 병든 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산업은 인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산업은 한 사회가 축적한 지식, 협력, 교육과 책임이 현실 속에서 작동한 결과입니다.
한국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면, 이제 설명해야 할 것은 한국이 왜 병들었는지가 아닙니다.
한국이 가진 어떤 능력과 문화가 이토록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