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진보라는 거대한 서사와 인본주의의 부재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영국의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에는 무수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중 어떤 사건을 선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역사가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역사책은 과거를 그대로 복사한 기록물이 아닙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사실을 선택하고, 원인을 구성하고, 사건 사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완전히 중립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의 위대함과 한계는 바로 같은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한다는 점은 정확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왜 특정 사실을 크게 보고 다른 사실을 작게 보았는지는 충분히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히틀러를 찬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가 히틀러를 숭배하거나 나치즘을 지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입니다. 그는 나치의 인종주의를 찬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1930년대 중반까지 카는 독일의 팽창을 히틀러 개인의 광기나 나치 이념만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베르사유 체제의 불공정성과 기존 국제질서의 실패를 중요한 원인으로 보았고, 독일의 불만 가운데 일부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유화정책을 현실적인 선택으로 옹호했습니다.
이 설명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베르사유 체제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고, 독일의 불만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는 것과 정치적 책임을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히틀러가 등장한 배경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침략 의지와 인종주의, 팽창주의에 대한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카는 독일의 불만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면서, 히틀러가 그 불만을 어떤 방향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심각하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이 끝까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카는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을 독일을 보는 관점의 전환점으로 회고했습니다. 전후에 집필한 소련 외교사에서는 뮌헨협정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의무와 자국의 장기적 이익을 함께 저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카는 유화정책의 오류를 끝내 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구조와 국익을 중시한 나머지 그 위험을 뒤늦게 인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련의 산업화는 보았지만 희생자는 충분히 보지 못했습니다
카는 평생에 걸쳐 14권의 《소비에트 러시아사》를 집필했습니다. 자료의 규모와 학문적 노력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연구입니다. 다만 이 저작의 본격적인 서술 범위는 1917년부터 1929년까지입니다. 1930년대의 대숙청과 강제수용소 체제를 직접 서술한 통사가 아닙니다. 따라서 카가 이 책에서 대숙청의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단정하면 저술의 범위를 넘어선 비판이 됩니다.
더 정확한 비판 대상은 그가 스탈린의 ‘대전환’을 해석한 방식입니다. 카는 1967년 「위로부터의 혁명」에서 1920년대 말 강제집단화의 결정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그는 스탈린이 원래 계획보다 집단화 일정을 급격히 앞당겼다는 사실도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설명에서는 계획경제와 대규모 집단농업으로의 전환을 소련 산업화가 요구한 구조적 귀결에 가깝게 보았습니다.
공동 연구자 R. W. 데이비스의 회고는 이 관점을 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에 따르면 카를 포함한 당시의 ‘반냉전’ 연구자들은 볼셰비키 혁명을 역사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보았고, 산업화와 강제집단화도 큰 틀에서는 불가피하며 궁극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데이비스는 동시에 카의 역사서가 승리자를 부각하고 패배자를 밀어낸다는 비판에 일정한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카가 폭력의 존재를 몰랐거나 전면 부정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국가의 생존과 산업화라는 결과에 높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고, 그 결과를 만들어낸 강제와 희생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서사적 비중을 두었습니다. 강제집단화로 삶의 기반을 잃은 농민과 기근의 희생자는 거대한 경제 전환의 주체라기보다 그 전환의 비용으로 밀려나기 쉬웠습니다.
그렇다고 카의 연구를 스탈린주의의 변론으로만 폐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정책 결정과 제도의 변화를 복원했고, 스탈린 한 사람의 악의만으로 소련 체제 전체를 설명하는 단순한 역사관에서 벗어날 길을 열었습니다. 후대 연구자들은 그가 남긴 구조적 분석을 활용하면서도, 그 구조 속에서 파괴된 개인과 집단의 경험을 더 적극적으로 복원했습니다.
여기서 이 글이 말하는 ‘역사주의’는 모든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는 일반적 태도가 아닙니다. 포퍼가 비판한 의미에 가깝게, 역사에 필연적인 발전 방향이 있으며 그 방향에 올라탄 세력이 과거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는 역사법칙주의를 뜻합니다. 국가가 생산력을 높이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온전한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는 강해졌지만 사람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았고, 산업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국가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언어로는 선택적 주의라 부를 수 있습니다
카를 오늘날의 기준으로만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세계관을 형성한 20세기 전반에는 복잡한 역사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거대 이론이 과학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우생학, 정신분석, 인종론과 지정학은 서로 내용이 달랐지만, 모두 인간과 사회의 운명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인지심리학은 이런 믿음이 지속되는 과정을 선택적 주의, 확증편향, 동기화된 추론 같은 개념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개념들은 카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도구이지, 그가 인지심리학을 몰랐기 때문에 폭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단순한 인과 설명은 아닙니다.
카의 강점은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한다는 점을 드러낸 데 있었습니다. 그의 맹점은 그 통찰을 자기 판단에 충분히 적용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그는 산업화와 국가의 생존에는 높은 의미를 부여했지만, 강제와 희생에는 낮은 서사적 비중을 두었습니다. 사실을 조작했다기보다 자신의 진보 서사에 맞추어 사실의 중요도를 다르게 배분한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떤 사실을 선택하느냐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택에서 밀려난 사실이 자신의 이론을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시대의 한계만으로 면책할 수는 없습니다
거대 이론이 과학처럼 보였던 지적 환경은 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의 판단을 면책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대에도 이론보다 구체적인 경험을 앞세운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 진영 내부의 사실 왜곡과 반대파 탄압을 직접 목격한 뒤 이를 《카탈로니아 찬가》에 기록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미래의 정의를 위해 현재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혁명 논리를 거부했습니다. 칼 포퍼는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역사가 예측 가능한 법칙을 따라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믿음을 비판했습니다.
세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경험은 서로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례는 당시에도 현실이 이론과 충돌할 때 이론을 의심할 지적 자원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카의 한계에는 시대적 조건뿐 아니라 자신의 설명 틀을 수정하지 않은 판단의 책임도 함께 있었습니다.
카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본주의적 한계선이었습니다
카의 해석이 지닌 한계를 지식의 부족으로만 설명하면 더 중요한 문제가 빠집니다. 인지심리학은 지식인이 왜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이론을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는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 경계는 어떤 역사적 성취도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취급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인본주의적 원칙에서 나옵니다. 이 기준에서 보면 소련의 산업화는 성취인 동시에 비극입니다. 생산력의 증가와 국가의 강화가 강제집단화와 기근의 고통을 상쇄하지는 못합니다.
사상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사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주의와 인본주의는 함께 갈 수 없는가
카는 국제정치에서도 현실주의를 강조했습니다. 국가는 도덕적 구호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힘과 이해관계를 무시해서는 국제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단 역시 옳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주의가 강대국의 힘만 현실로 인정하고, 그 힘에 희생되는 사람의 삶을 현실에서 제외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현실주의입니다.
독일의 불만도 현실이지만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국민의 자유도 현실입니다. 소련의 산업화도 현실이지만 강제집단화로 삶을 잃은 농민의 고통도 현실입니다.
강대국의 요구는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희생자의 경험은 감상적인 문제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현실주의라기보다 권력의 관점에 가깝습니다.
인본주의는 현실주의를 대체하는 설명 이론이 아닙니다. 다만 힘과 국익만을 현실로 인정하지 못하도록 현실주의의 시야를 넓히는 규범적 제동장치입니다.
E.H. 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카의 저작은 폐기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고 해석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제정치에서는 권력과 이해관계를 외면한 이상주의의 한계를 드러냈고, 방대한 소련사 연구를 통해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복원했습니다.
그의 한계도 그 성취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카는 역사가의 선택을 날카롭게 분석했지만, 자신의 선택이 진보와 국가 건설의 서사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는 충분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모형과 충돌할 때 현실의 일부를 주변으로 밀어내면 학문은 이념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므로 카의 명제는 카 자신에게 되돌려 적용해야 합니다. 역사란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대화이지만, 그 대화에는 승리자와 국가뿐 아니라 희생자의 목소리도 들어가야 합니다. 산업화를 말할 때 굶어 죽은 사람을 함께 보아야 하고, 국제질서의 구조를 설명할 때 침략당한 사람의 자유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역사의 방향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가치도 결국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E.H. 카의 저술
-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 E.H. 카, 《20년의 위기: 1919-1939》.
- E.H. 카, 《소비에트 러시아사》, 전 14권.
- E.H. 카, 《러시아 혁명: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1917-1929》.
- E.H. 카, 「위로부터의 혁명」, 《뉴 레프트 리뷰》 I/46, 1967.
연구와 비평
- R. W. 데이비스, 「유리 산업을 빼시오: E.H. 카와의 공동 연구」, 《뉴 레프트 리뷰》 I/145, 1984.
- 조너선 해슬럼, 「E.H. 카와 소비에트 러시아사」, 《히스토리컬 저널》 26권 4호, 1983, 1021-1027쪽.
- 스티븐 스미스, 「이름을 말하지 않은 현실주의: E.H. 카의 외교사 연구」, 《리뷰 오브 인터내셔널 스터디스》, 2016.
- 제임스 라이언·수전 그랜트, 「최고의 역사 위조자 스탈린: E.H. 카와 역사 연구의 위험」, 《레볼루셔너리 러시아》, 2022.
비교를 위한 저술
-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