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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 톰슨은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E. P. 톰슨의 대표작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가해진 신좌파, 보수주의, 여성사, 제국사, 경제학의 다각적 비판을 종합하고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지닌 공헌과 선택적 편향의 한계를 다룹니다.

E. P. 톰슨은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여러 비평을 통해 다시 읽는 E. P.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여러 비평을 통해 다시 읽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E. P. 톰슨은 20세기 역사학에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왕과 정치가, 제도와 통계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의 경험을 역사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톰슨은 노동계급을 산업화가 자동으로 만들어낸 경제적 범주로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공통된 생활 경험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계급이 만들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이 관점은 인간을 생산관계의 수동적 결과로만 보는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었습니다. 톰슨은 실제 인간의 경험과 문화, 선택과 저항을 역사 속에 복원했습니다.

그는 또한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영국 공산당을 떠났습니다. 스탈린주의를 비판했고, 인간을 구조의 효과로만 보는 알튀세르식 마르크스주의에도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톰슨을 단순한 공산주의 역사학자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인간과 경험, 도덕적 책임을 되찾으려 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역사학이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톰슨이 보수주의자에게만 비판받은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와 여성사 연구자, 제국사 연구자와 경제사 연구자에게서도 서로 다른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페리 앤더슨의 비판

경험은 풍부하지만 사회 전체를 설명할 이론이 부족합니다

톰슨과 같은 영국 신좌파에 속했던 페리 앤더슨은 톰슨의 역사학을 ‘유사 경험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앤더슨이 보기에 톰슨은 노동자들의 문화와 생활 경험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했지만, 영국 사회 전체의 권력구조와 국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설명할 충분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톰슨은 추상적인 이론이 실제 인간의 경험을 지워버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앤더슨은 경험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을 구조적으로 해석할 개념이 없다면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논쟁은 톰슨의 애매한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의 눈에는 톰슨이 지나치게 경험에 의존한 역사가였습니다. 그러나 비마르크스주의자의 눈에는 그가 노동자의 다양한 경험을 결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하나의 이론적 서사로 묶은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톰슨은 이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 가까운 이론을 원했습니다. 문제는 그 경험을 선택하고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그의 사회주의적 관점이 작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스크루턴의 비판

노동자를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계급적 주체로 만들었습니다

로저 스크루턴은 톰슨이 노동자를 역사에서 복원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노동계급을 마치 하나의 의지와 목적을 가진 행위자처럼 묘사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노동자들은 하나의 조직도 아니고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도 아닙니다. 종교와 지역, 직업과 소득, 가족관계와 정치성향도 서로 다릅니다.

어떤 노동자는 사회주의자가 되었지만 다른 노동자는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를 지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동계급이라는 정체성보다 가족, 종교, 지역공동체와 국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는 노동계급이 등장하고, 투쟁하며, 각성하고, 배신당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스크루턴의 관점에서 이것은 실제 인간의 다양한 선택을 하나의 집단적 서사로 묶는 방식입니다.

톰슨은 구조가 인간을 만든다는 결정론에 반대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계급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개인의 행동을 결국 하나의 ‘노동계급 형성’으로 묶었다는 점에서는 계급이라는 추상적 주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비판의 핵심은 노동자의 정치적 선택입니다.

노동자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면 계급의식으로 해석되고, 종교와 국가, 사유재산과 시장을 지지하면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설명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경험은 이론에 부합할 때만 진정한 경험으로 인정되는 셈입니다.

톰슨은 노동자를 역사적 주체로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사회주의적 노동계급이 되기를 거부할 자유까지 충분히 인정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성사 연구자들의 비판

‘노동계급’은 사실상 남성 노동자였습니다

톰슨에 대한 가장 지속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는 여성과 가정의 경험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는 여성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노동자와 정치 참여, 가족경제에 대한 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 형성의 중심 주체는 대체로 남성 장인, 직조공, 노동운동가와 급진주의자로 묘사됩니다.

여성사 연구자 조앤 스콧은 톰슨이 노동계급의 경험을 사실상 남성의 경험과 동일시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도 이 책이 노동계급의 형성을 ‘청년기’와 ‘성인 남성기’에 비유한 표현, 남성 중심의 정치조직과 노동 경험을 대표적인 것으로 삼은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가사노동과 육아, 가족의 생계 유지도 산업화 시대 노동자의 삶을 구성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노동과 정치운동이 노동계급 형성의 중심으로 놓이면서, 가정에서 수행된 여성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습니다.

이 비판은 톰슨의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아래로부터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까?

지배층 대신 남성 노동운동가를 중심에 놓았다고 해서 사회의 모든 주변부가 복원된 것은 아닙니다.

톰슨은 역사에서 배제된 노동자를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내부에서 다시 대표적인 인간과 주변적인 인간을 나누었습니다.


제국사 연구자들의 비판

영국 노동계급은 제국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톰슨의 역사학은 영국 국내의 노동자 경험을 깊이 있게 보여주었지만, 영국 노동계급이 제국과 식민지, 노예제와 세계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산업화와 노동자의 삶을 영국 내부의 역사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영국 산업은 식민지에서 공급된 원료와 시장, 해상무역과 제국의 군사력에 크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피해자이면서도, 제국이 만들어낸 경제적 질서의 일부를 공유한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값싼 원료와 해외시장, 제국의 재정과 산업구조는 영국 노동자의 일자리와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역사가 프리야 사티아는 톰슨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영국사는 제국을 배경에서 지워버리는 국내 중심적 역사학의 한계를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톰슨의 영향력을 기념하는 역사학계의 회고에서도 인종과 제국, 영국 밖의 세계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한계로 지적됩니다.

이 비판에 따르면 노동자를 단순히 자본가에게 착취당한 피해자로만 묘사해서는 부족합니다.

한 사람은 국내의 계급관계에서는 약자이면서, 국제적 제국질서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계급만으로는 이런 복합적인 관계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톰슨은 영국 노동자를 지배층의 역사에서 구해냈지만, 그 노동자를 제국의 역사 안에 충분히 다시 배치하지 못했습니다.


종교사 연구자들의 비판

감리교를 노동자의 패배와 순응으로만 보았습니다

톰슨은 감리교가 노동자의 급진성을 약화시키고 고통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감리교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내세적 위안을 찾게 만드는 종교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해석은 종교를 계급의식 형성과 관련해 본다는 점에서는 일관됩니다. 그러나 종교가 노동자의 삶에서 수행한 여러 기능을 지나치게 축소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는 노동자를 순응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문해력과 절제, 상호부조와 공동체 조직을 발전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계급의식을 가리는 허위의식만이 아니라, 실제 삶의 의미와 도덕적 규율을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톰슨의 책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서도 감리교를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주요 약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됩니다.

이 문제는 톰슨이 노동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노동자가 종교를 선택했다면, 그것도 노동자의 실제 경험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의 형성을 방해한다고 판단하는 순간 종교적 경험은 독립적인 인간 경험이 아니라 정치적 장애물로 축소됩니다.


‘도덕경제’에 대한 비판

공동체가 믿는 정의와 실제로 작동하는 경제는 다릅니다

톰슨은 18세기 영국의 식량폭동을 단순한 군중의 난동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식량과 생필품의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흉년에 곡물을 외부로 반출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은 공동체의 도덕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톰슨은 이러한 규범을 ‘도덕경제’라고 불렀습니다.

이 개념의 공헌은 분명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무지와 충동으로 보지 않고, 그들 나름의 정의관과 규범에 따른 정치적 행동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덕경제 개념에는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첫째, 공동체가 어떤 거래를 부도덕하다고 믿었다는 사실과 그 판단이 실제로 정의롭고 효과적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둘째, 가격을 통제하고 곡물의 외부 반출을 막으면 단기적으로 지역주민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과 유통의 유인을 떨어뜨리고 다른 지역의 부족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 최근 연구는 톰슨의 도덕경제 개념 자체는 여전히 가치가 있지만, 그가 애덤 스미스와 당시의 정치경제를 단순한 자유시장 논리로 묘사한 방식은 부정확했다고 지적합니다. 톰슨은 이후 자신의 개념이 추상적 시장이 아니라 실제 시장과 사회관계를 연구한 것이라고 반론했습니다.

따라서 도덕경제는 당시 대중이 무엇을 정당하다고 믿었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적 개념으로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경제질서가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공급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를 판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도덕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감정에 따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내는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구조주의와 문화이론의 비판

‘경험’도 해석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톰슨은 알튀세르식 구조주의가 인간의 경험과 선택을 지워버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화이론과 구조주의 진영에서는 톰슨이 경험을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투명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반론이 나왔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화, 종교와 정치적 개념을 통해 경험을 이해합니다.

같은 임금 삭감도 어떤 사람은 계급적 착취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경기침체나 개인적 실패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곧바로 하나의 정치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노동자의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경험이 어떤 언어와 문화적 틀 속에서 해석되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 비판은 일정 부분 타당합니다. 톰슨은 실제 경험을 추상적 이론보다 우선하려 했지만, 역사가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판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다시 인간의 실제 고통과 선택이 담론의 효과로만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톰슨과 구조주의자들의 논쟁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았다기보다, 역사학이 경험과 구조를 어떻게 함께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남겼습니다.


톰슨의 가장 큰 공헌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톰슨의 공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노동자를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에게도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할 능력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실패한 운동과 사라진 생활방식도 결과만으로 조롱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후대의 승자가 역사의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것처럼 과거를 서술하는 태도에 반대했습니다.

이 점에서 톰슨은 역사를 실제 인간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여성사와 식민지사, 소수자사와 일상생활사가 발전한 데에도 톰슨의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준 영향은 매우 큽니다. 역설적으로 톰슨을 비판한 여성사와 제국사도 상당 부분 그가 열어놓은 방법론적 길 위에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톰슨의 한계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의 작업 전체를 무가치하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공헌을 인정해야 비판도 더 정확해집니다.


여러 비판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

페리 앤더슨은 톰슨에게 이론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스크루턴은 그가 계급을 지나치게 실체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사 연구자들은 남성 노동자의 경험을 노동계급 전체의 경험처럼 묘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국사 연구자들은 영국 노동자를 식민지와 세계경제에서 분리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제사 연구자들은 도덕경제의 규범적 정당성과 실제 경제적 결과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비판들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톰슨은 평범한 사람의 경험을 역사에 복원했지만, 어떤 경험을 대표적인 경험으로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도덕적 관점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톰슨은 모든 사실을 왜곡한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복원한 사실과 인간의 목소리는 매우 풍부합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하나의 노동계급 형성이라는 서사로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급진적 남성 노동운동가는 중심에 놓였지만 여성과 가정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국내 노동자의 계급 경험은 상세했지만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배경으로 물러났습니다. 사회주의적 연대는 역사적 형성으로 강조되었지만, 종교와 애국심, 개인적 상승을 선택한 노동자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의심받았습니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역사도 누구를 아래의 대표자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결론

E. P. 톰슨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지만, 기계적인 경제결정론자나 소련의 충성스러운 옹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산당을 떠났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했으며, 구조보다 인간의 경험과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을 다시 불러냈고, 평범한 사람도 역사를 만드는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복원한 인간은 모든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노동계급의 대표자는 주로 남성이었고, 영국인이었으며, 급진적 정치운동에 참여한 노동자였습니다. 여성과 가족, 제국과 식민지, 종교와 국가,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은 노동자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습니다.

따라서 톰슨을 단순히 위대한 인본주의적 역사학자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마르크스주의적 선전가라고 폄하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장 적절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톰슨은 역사에서 배제된 노동자를 구해냈지만, 자신이 선택한 노동자를 노동계급 전체의 대표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역사학은 아래로부터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래에도 여성과 종교인, 보수적인 노동자와 제국 밖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함께 볼 때 톰슨의 역사학은 폐기해야 할 이념서가 아니라, 위대한 전환을 만들어냈지만 그 전환 자체도 다시 수정되어야 했던 역사학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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