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왜 지식인은 거친 말보다 점잖은 부당행위를 보지 못하는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를 통해 트럼프 비평이 사건의 맥락보다 말투와 이미지에 치우치는 방식을 살펴봅니다.

왜 지식인은 거친 말보다 점잖은 부당행위를 보지 못하는가

왜 지식인은 거친 말보다 점잖은 부당행위를 보지 못하는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탈진실 시대의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트럼프의 과장, 거짓말, 전문가에 대한 불신, 언론과의 갈등을 이성과 객관적 진실이 쇠퇴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가짜 뉴스, 확증편향, 정치적 부족주의의 문제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트럼프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자세히 기록하면서도,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전에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는 같은 비중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상대의 행동은 비판과 검증으로 처리하고, 트럼프의 대응만 공격과 규범 파괴로 기록합니다. 사건의 전반부를 지우면 트럼프는 언제나 먼저 싸움을 건 사람처럼 보입니다.

거친 말과 부당한 행동은 다르다

정치에서는 말투가 실제 행동보다 더 쉽게 보입니다.

한쪽은 점잖은 언어로 말하고 다른 쪽은 조롱과 독설로 반격합니다. 그러면 후자가 더 위험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차분한 언어로 제도와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동이 거친 말보다 덜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판단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더 세련되게 말했는가가 아닙니다.

누가 먼저 무엇을 했는가.
누가 더 강한 권력을 사용했는가.
누가 절차를 왜곡했는가.
누가 실제로 더 큰 피해를 만들었는가.

가장 무례하게 말한 사람과 가장 부당하게 행동한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조롱은 풍자이고 반격은 품격 상실인가

트럼프 집권기 할리우드는 그를 정상적인 정치적 경쟁자라기보다 마음껏 조롱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했습니다.

알렉 볼드윈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트럼프를 반복적으로 무능하고 허영심 많은 인물로 희화화했습니다. 캐시 그리핀은 피투성이가 된 트럼프의 잘린 머리 모형을 들었고, 마돈나는 반트럼프 집회에서 백악관을 폭파하는 생각을 언급했습니다. 로버트 드니로도 공개석상에서 거친 욕설로 트럼프를 공격했습니다.

권력자에 대한 풍자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기준의 비대칭입니다.

연예인이 대통령을 모욕하면 풍자와 저항이 되고,
대통령이 이에 직접 반격하면 품격 상실과 권위주의가 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답게 더 절제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지속적인 조롱과 모욕은 정상적인 표현으로 간주하면서, 트럼프의 반응만 공격성의 증거로 제시한다면 공정한 평가는 아닙니다.

기존 대통령들도 비판자에게 대응했습니다. 다만 대변인, 참모, 정당, 우호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트럼프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반격했습니다. 차이는 공격의 존재보다 "공격의 직접성과 가시성"에 있었을 수 있습니다.

반격만 기록하면 누구나 공격자가 된다

트럼프는 흔히 아무에게나 충동적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갈등을 시간순으로 보면 상당수 발언은 자신에 대한 비난, 모욕, 불공정한 대우에 대한 반격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대응이 적절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선제행위와 반응은 구별해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한 행동을 삭제한 뒤 트럼프의 답변만 보여주면 그는 언제나 이유 없이 공격하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언론이 상대방의 발언에는 ‘비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트럼프의 답변에는 ‘인신공격’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결론은 이미 정해집니다.

경험주의적인 평가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건의 순서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정말 충동적이었는가

트럼프의 개별 발언은 과장되거나 부정확했으며, 그의 언행 방식이 민주주의의 규범을 손상한 측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거시적인 정책 방향까지 무질서한 망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무역보다 상호주의를, 무조건적인 동맹보다 비용 분담을, 국제기구보다 국민국가의 주권을, 추상적 국제평판보다 국익과 힘을 중시했습니다. 제조업, 에너지, 국경, 공급망도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주의 정치학에서는 낯선 주장이 아닙니다. 국가는 선의보다 이해관계와 힘에 따라 행동하며, 동맹과 무역도 국익에 기여하는 범위에서 유지된다는 생각은 현실주의의 기본 전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가쿠타니를 비롯한 일부 자유주의 지식인은 트럼프의 정책을 하나의 일관된 국가관으로 해석하기보다, 무지·나르시시즘·거짓말의 결과로 환원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관을 심리적 결함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탈진실이라 부를 때

가쿠타니는 진실의 위기를 비판하지만,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충분히 해석하지 않은 채 탈진실의 범주에 넣는 경향이 있습니다.

논리는 쉽게 순환합니다.

우리가 제시한 설명은 객관적 진실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사실을 거부합니다.
그가 거부한다는 사실이 그의 반지성주의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거부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사실에 덧붙인 해석인지 먼저 구별해야 합니다. 전문가와 언론이 과거에 틀렸거나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면, 불신은 단순한 무지라기보다 경험에서 나온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진실을 지키겠다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주장을 가장 강한 형태로 재구성해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장 무례한 사람이 반드시 가장 부당한 사람은 아니다

트럼프의 말에는 과장과 오류가 있었고 대통령의 언어로 부적절한 표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가 모든 갈등에서 먼저 공격했고, 상대보다 더 부당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습니다.

거친 말은 짧게 인용할 수 있습니다. 점잖은 부당행위는 사건의 경위와 권력관계를 길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론과 지식인은 전자를 확대하고 후자를 배경으로 밀어내기 쉽습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진실의 죽음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반격만 기록하고 그에 앞선 조롱과 공격을 지운다면, 그 비평 역시 또 하나의 정치적 서사가 됩니다.

정치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말의 품격이 아닙니다.

누가 먼저 무엇을 했는지, 누구에게 더 큰 권력이 있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누가 더 부당한 행동을 했는지입니다.

참고문헌

가쿠타니, 미치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김영선 옮김. 돌베개, 2019.

Morgenthau, Hans J. Politics Among Nations. Alfred A. Knopf, 1948.

Waltz, Kenneth N.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Addison-Wesley,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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