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는 과학적 사실이지만, 기후정책은 인간 사회가 내리는 선택입니다. 이 글은 두 가지를 구분하자고 제안합니다. 온난화가 현실이라는 것과 지금 시행되는 모든 기후정책이 옳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스리랑카, 네덜란드, 독일에서 벌어진 일들은 비용을 누가 지는지 묻지 않은 기후정책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보여줍니다.
기후변화는 과학이고, 기후정책은 정치적 선택이다
기후변화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구는 따뜻해지고 있고, 인간 활동이 온난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계의 주류 판단입니다. IPCC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를 명백하게 일으켰으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표 온도가 약 1.1도 상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기후과학은 온도와 해수면, 강수량과 배출량 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합니다. 반면 기후정책은 세금과 전기요금, 식품 가격, 농민의 생계, 공장 일자리,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좌우합니다. 앞의 것은 관측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분배의 문제입니다. 이 둘을 뭉뚱그리면 "과학을 인정한다면 이 정책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잘못된 요구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후정책을 평가할 때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이 정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이 정책의 목표를 위해 동원되는가. 이 질문을 건너뛰면 기후정책은 쉽게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유류세는 도시에선 탄소 가격, 지방에선 출근 비용
2018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비용 분배를 무시한 기후정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 사건입니다. 마크롱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유류세 인상을 추진했지만, 몇 주간 이어진 격렬한 시위 끝에 인상 계획을 최소 6개월 유예했습니다. 정부가 기후 대응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정책이 거리의 분노 앞에서 후퇴한 것입니다.
이유는 같은 세금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이 촘촘한 도시의 엘리트에게 유류세는 탄소를 줄이는 수단이었지만, 지방과 외곽의 노동자에게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니라 출근 수단이었고 연료비는 생활비의 일부였습니다. 정책 문서에는 "탄소 가격"이라고 적힌 것이 서민의 가계부에는 "출근 비용 증가"로 찍혔습니다. 노란 조끼 시위는 사람들이 기후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기후정책의 비용이 평범한 사람에게 불공정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탄소를 줄이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묻지 않는 정책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스리랑카 화학비료 금지: 대안 없는 전환은 식량 생산을 무너뜨린다
기후와 환경의 이름으로 농업을 급격히 바꿨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스리랑카가 보여주었습니다. 스리랑카 정부는 2021년 친환경 농업을 명분으로 화학비료 사용을 금지하고 유기농 전환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화학비료 금지는 악천후와 겹치면서 작물 수확량을 떨어뜨렸고 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정부는 정책에서 후퇴했습니다.
비료는 환경 문제의 원인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식량 생산의 기반입니다. 비료 사용을 줄이려면 토양 관리, 유기질 비료 공급, 농민 교육, 수확량 감소 보전, 단계적 전환 같은 대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목표만 앞세우고 농민의 현실을 건너뛰면 식량 생산이 흔들리고, 그 충격은 식품 가격 상승과 농가 부채, 소비자의 식탁 부담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도달합니다. 환경 목표가 선하다고 해서 식량 안보를 실험대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네덜란드 농민 시위: 속도와 방식이 농민을 저항자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농민 시위도 같은 구조입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동물 분뇨와 비료에서 나오는 질소 산화물과 암모니아 배출을 줄여야 한다며 농업 부문에 강한 감축 압박을 가했고, 농민들은 대규모 항의 시위로 맞섰습니다.
농업 배출은 실제 문제이고 축산과 비료 사용은 환경에 부담을 줍니다. 쟁점은 속도와 방식입니다. 농민에게 배출 감축은 추상적인 환경 목표가 아니라 가축 수, 농장 규모, 대출 상환, 가족 생계의 문제입니다. 농민은 토양이 망가지면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이고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농민의 경험과 생계를 무시하고 숫자로만 밀어붙이면, 농민은 정책의 협력자가 아니라 저항자가 됩니다. 농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농업 기후정책은 현장에서 지속되지 않습니다.
독일 에너지 위기: 에너지 가격은 저소득층을 가장 먼저 압박한다
기후정책에서 에너지는 핵심이지만, 에너지는 단순한 배출원이 아니라 병원과 냉장고, 난방, 통신, 공장, 학교를 움직이는 생활의 기반입니다. 2022년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이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독일의 에너지 비용은 그해 전년 대비 31% 급등했고 EU 전체에서도 33.2% 올랐습니다.
이 부담은 모든 가구에 똑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사람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불편이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난방과 냉방, 이동과 식비를 줄여야 하는 압박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필요할 수 있어도, 그 전환이 에너지 빈곤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인본주의적 정책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탄소 감축이라는 목표가 사람을 춥게 만들고 공장을 멈추게 하고 생활비를 폭등시키는 경로로 추진되면 정당성을 잃습니다. 좋은 기후정책은 탄소를 줄이는 동시에 인간의 삶을 지키는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전기가 없는 6억 6천만 명: 개발도상국에 에너지는 생존의 문제다
기후정책은 부유한 나라의 관점만으로 설계될 수 없습니다. 세계에는 아직 기본적인 전기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Tracking SDG 7: 에너지 진전 보고서 2025』는 2025년 기준 세계 인구의 약 92%가 기본 전기 접근성을 갖췄지만 여전히 6억 6천만 명 이상이 전기를 쓰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유한 나라에서 기후정책은 전기차와 태양광, 탄소세, 넷제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사람에게 에너지는 생존과 존엄의 문제입니다. 전기가 있어야 병원이 돌아가고, 백신과 식품을 냉장 보관하고, 아이들이 밤에 공부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산업이 시작됩니다.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것은 탄소 감축 명령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입니다. 더 깨끗한 성장 경로를 돕는 것은 필요하지만, 성장 자체를 죄악시하면 안 됩니다. 기후정책은 가난한 나라가 부유해질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연재해 사망자 감소: 인간은 기후의 희생자이자 문제 해결자다
기후변화가 위험하다는 말은 맞지만, 인간이 무력하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장기적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20세기에는 자연재해로 한 해 100만 명 넘게 숨진 해도 있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그 규모는 크게 낮아졌습니다. 재난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더 잘 대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기경보, 의료, 건축, 방재 인프라, 식량 저장, 국제 구호, 경제성장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이 사실은 기후정책의 방향에 중요한 함의를 줍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만이 아니라 적응까지 포함합니다. 더 튼튼한 제방과 건물, 더 나은 배수시설, 더 정확한 기상 예보, 더 안정적인 전력망, 더 좋은 병원, 더 생산적인 농업, 그리고 더 부유한 사회가 사람을 살립니다. 가난한 사회를 가난한 채로 두고 탄소만 줄이는 정책은 인간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기후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입니다.
기후 종말론이 위험한 이유: 비용을 묻지 못하게 만든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것과 "인류가 곧 멸망한다", "몇 년 안에 끝난다", "토론할 시간이 없다"는 종말론은 다릅니다. 종말론은 비용을 묻지 못하게 하고, 반대 의견을 비도덕으로 몰고, 인간을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지구의 해충처럼 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실제 정책은 언제나 선택입니다. 어떤 에너지를 쓸지, 어떤 속도로 전환할지, 농민에게 어떤 부담을 지울지, 노동자에게 어떻게 보상할지, 개발도상국의 성장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식품 가격 상승을 어떻게 막을지. 과학은 위험의 크기를 알려주지만 이 질문들에 답해주지는 않습니다. 답은 인간 사회가 토론으로 정해야 합니다. 기후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철저하게 따져야 합니다.
문제는 기후가 아니라 사람을 뒷전에 두는 정책이다
기후변화를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기후정책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후변화가 현실이기 때문에 기후정책은 더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프랑스 유류세 인상은 서민과 지방 거주자의 생활비를 무시했고, 스리랑카 비료 금지는 식량 생산의 현실을 무시했으며, 네덜란드 농업 규제는 농민의 생존과 충돌했습니다. 독일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가격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쉽게 흔드는지 보여주었고, 개발도상국의 전력 접근 문제는 에너지가 인간 발전의 기반임을 드러냈습니다.
이 사례들이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기후정책은 인간을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인간을 배출량의 원인으로만, 농민을 메탄과 질소의 배출원으로만, 자동차로 출근하는 노동자를 탄소세의 대상으로만, 전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탄소 예산의 변수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기후정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지, 인간이 기후정책의 재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본주의적 기후정책의 네 가지 기준
다시 생각하는 인본주의는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현실로 인정하되, 기후를 인간 위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인본주의적 기후정책은 네 가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첫째, 과학적 현실을 인정합니다. 온난화는 현실이고 인간 활동은 중요한 원인입니다.
둘째, 정책 비용을 정직하게 밝힙니다. 탄소 감축은 공짜가 아니며, 누가 부담하는지 드러내야 합니다.
셋째, 약한 사람에게 비용을 떠넘기지 않습니다. 농민과 노동자, 저소득층, 개발도상국이 기후정책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 감축과 적응을 함께 봅니다. 탄소를 줄이는 것만큼 인간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기후정책의 최종 목표는 탄소 수치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이 더 안전하고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잃으면 기후정책은 선한 명분을 가진 통제 기술이 되고, 그 기준을 지키면 인간을 위한 현실적 개혁이 됩니다. 지구를 지키자는 말이 인간의 삶을 희생시키자는 말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이 농민과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을 밀어내는 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말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말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변화도 현실이고 인간도 현실입니다. 이 두 현실을 함께 보지 못하는 기후정책은 인류를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참고문헌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Climate Change 2023: Synthesis Report. 2023.
- OECD. “Steering the Recovery towards an Ecological Transition.” In OECD Economic Surveys: France 2021.
- World Bank. “Sri Lanka Public Finance Review.” 2025.
- World Bank. “Factsheet: World Bank Support to Procure and Distribute Urea Fertilizer for Sri Lanka.” Updated December 1, 2022.
- Government of the Netherlands. “The Nitrogen Strategy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Rural Areas.”
- Eurostat. “Annual Increase in Industrial Producer Prices at 31.1% in the Euro Area.” December 2, 2022.
- United Nations, IEA, IRENA, UNSD, World Bank, and WHO. Tracking SDG 7: The Energy Progress Report 2025. 2025.
- Ritchie, Hannah, Pablo Rosado, and Max Roser. “Natural Disasters.” Our World in Data. Data based primarily on EM-D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