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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인종 문제: 흑인을 말했지만, 흑인에게 권한을 주었는가


사회적 약자와 시민권을 옹호해 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정작 본인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서는 흑인 창작자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던 인종적 대표성의 한계와 위선을 고발합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인종 문제: 흑인을 말했지만, 흑인에게 권한을 주었는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인종 문제: 흑인을 말했지만, 흑인에게 권한을 주었는가

흑인을 말했지만, 흑인에게 권한을 주었는가

스트라이샌드의 리버럴 위선은 흑인 문제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녀는 미국 리버럴 문화권의 대표 인물답게 시민권, 인종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그녀가 흑인을 주제로 말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자기 프로젝트에서 흑인에게 권한을 주었는가입니다.

아래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76년 이후 그녀의 영화에서 감독이나 프로듀서 중에서 흑인은 단 한명 뿐이었습니다.

더 상징적인 사례는 《City at Peace》입니다. 이 작품은 워싱턴 D.C.의 갱 폭력, 청소년, 도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명백히 흑인 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핵심 제작진은 백인이었습니다. 흑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카메라 뒤의 권한은 흑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리버럴 문화권의 전형적 모순입니다. 흑인은 이야기의 주제가 됩니다. 흑인의 고통은 도덕적 메시지가 됩니다. 흑인 공동체의 문제는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그러나 제작 권한, 예산 권한, 연출 권한,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리버럴 백인 엘리트의 손에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스트라이샌드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위선입니다. 흑인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자기 프로젝트에서는 흑인에게 권한을 거의 나누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말과 행동의 차이입니다.

리버럴은 흑인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흑인을 동등한 결정권자로 세우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흑인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 공감받아야 할 대상, 예술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이 되지만, 권한을 가진 동료가 되지는 못합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제작 영화 전체 리스트 (연도별)

1. 《스타 탄생 (A Star Is Born)》 — 1976년 (극장 영화)

  • 감독: 프랭크 피어슨 (백인 남성)
  • 프로듀서: 존 피터스 (백인 남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백인 여성)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2. 《메인 이벤트 (The Main Event)》 — 1979년 (극장 영화)

  • 감독: 하워드 지프 (백인 남성)
  •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존 피터스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3. 《엔틀 (Yentl)》 — 1983년 (극장 영화)

  •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러스티 레모런드 (백인)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4. 《너츠 (Nuts)》 — 1987년 (극장 영화)

  • 감독: 마틴 리트 (백인 남성)
  •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5. 《사랑과 추억 (The Prince of Tides)》 — 1991년 (극장 영화)

  •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앤드류 S. 카쉬 (백인)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6. 《침묵의 복종 (Serving in Silence)》 — 1995년 (TV 영화)

  • 감독: 제프 블렉너 (백인 남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글렌 클로즈, 시스 코먼, 크레이그 자단, 닐 메론 (모두 백인)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7. 《로즈 앤 그레고리 (The Mirror Has Two Faces)》 — 1996년 (극장 영화)

  •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아논 밀천 (백인)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8.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 두 여인 (Rescuers: Stories of Courage: Two Women)》 — 1997년 (TV 영화)

  •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 (백인 남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시스 코먼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9. 《롱 아일랜드 사건 (The Long Island Incident)》 — 1998년 (TV 영화)

  • 감독: 조셉 사전트 (백인 남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시스 코먼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10. 《바리안의 전쟁 (Varian's War)》 — 2001년 (TV 영화)

  • 감독: 라이오넬 치트윈드 (백인 남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시스 코먼
  •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

11. 《왓 메이크스 어 패밀리 (What Makes a Family)》 — 2001년 (TV 영화)

  • 감독: 매기 그린월드 (백인 여성)
  • 총괄 프로듀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우피 골드버그, 시스 코먼, 크레이그 자단, 닐 메론
  • 흑인 프로듀서: 1명 (우피 골드버그)

1세대 여성 페미니스트의 한계

영화계, 비평계, 그리고 할리우드의 정치를 분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할리우드 백인 리버럴(자유주의자)들의 모순과 한계'를 비판할 때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예시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커리어가 끊임없이 소환되는 것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녀의 사례가 할리우드 비즈니스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말'의 성량과 '실천'의 크기가 주는 괴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단순히 투표를 잘하자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민주당의 거물 후원자이자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등 보수 정치권을 향해 가장 날 선 비판(2018년에는 아예 트럼프를 저격하는 정치적 앨범 Walls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을 쏟아낸 인물입니다. 사회적 발언권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평론가들과 대중이 "그렇다면 본인이 왕처럼 군림했던 영화 제작 현장(Barwood Films)에서는 얼마나 다양성을 실천했는가?"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흑인 감독/프로듀서 0명(우피 제외)'이라는 명확한 수치로 드러나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2. 백인 페미니즘(White Feminism)의 상징적 한계

할리우드 역사에서 그녀는 대단한 선구자입니다. 여성 감독에게 메가폰을 주지 않던 1980년대에 당당히 감독, 주연, 제작을 독식하며 "여성도 할 수 있다"를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나 문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이런 행보를 두고 '소수자성 중에서 오직 백인 여성의 권리만을 대변했던 초기 백인 페미니즘의 전형적인 한계'라고 지적합니다. 성별(Gender)의 벽은 깨부수기 위해 싸웠지만, 인종(Race)의 벽을 깨거나 흑인 영화인에게 기회를 주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는 무지했거나 관심이 없었다는 비판입니다.

3. 비욘세 《스타 탄생》 관련 실언 논란

최근까지도 이러한 시선이 유지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의 영화 《스타 탄생》(2018)이 크게 성공했을 때, 1976년 원작자였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한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비욘세가 주연을 맡는다고 했을 때 정말 훌륭하고 완전히 다를 거라 생각했다. 멀티 레이셜(다인종) 캐스팅에 음악도 힙합/랩 스타일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레이디 가가 버전은) 내가 만들었던 영화랑 너무 비슷하더라."

이 발언이 나온 후 대중과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흑인이 주연을 맡으면 당연히 랩이나 힙합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백인 리버럴의 인종주의적 선입견(Stereotype)이자 오만"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평생 인종 평등을 외쳤지만, 정작 알맹이는 흑인의 예술을 특정 카테고리에 가두어 생각하는 기득권 백인의 시선에 머물러 있음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녀가 흑인을 의도적으로 차별하고 배척해서 고용하지 않았다는 식의 가십으로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입으로는 세상의 모든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미국의 부유한 백인 리버럴 엘리트들이, 막상 자신들의 권력과 돈이 얽힌 진짜 비즈니스에서는 얼마나 폐쇄적이고 기득권 중심적인가"를 증명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확실한 '인간 지표'로 유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 및 결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직접 제작한 모든 영상 작품을 통틀어 감독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만, 2000년대 전후로 사회적 메시지(특히 성소수자 인권 등)를 담은 TV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기획하면서, 2001년작 《What Makes a Family》에서 우피 골드버그를 공동 총괄 프로듀서로 영입한 것이 그녀의 제작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흑인 프로듀서가 포함된 사례입니다.

아마도 우피 골드버그 역시 초기엔 그렇지 않았지만, 유명해진 이후에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요구한 대표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알면 알수록 리버럴의 위선이 어떠한 형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봐도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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