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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의 353달러 기부금 논란: 자비는 말이 아니라 비용으로 증명된다


앨 고어의 1997년 세금신고서에 나타난 353달러 기부금 논란을 통해, 정치인이 말하는 공적 자비와 자신의 돈을 내놓는 사적 자선 사이의 차이를 살펴봅니다.

앨 고어의 353달러 기부금 논란

정치인은 자주 자비를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며, 공동체가 더 따뜻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진보 정치에서 “자비”, “연민”, “사회적 책임” 같은 단어는 중요한 도덕 언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정치인이 말하는 자비는 누구의 자비입니까? 자신의 돈과 시간을 내놓는 자비입니까, 아니면 정부 예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돈을 배분하는 자비입니까?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앨 고어입니다. 고어는 전 미국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그는 환경운동가이기 이전에 “자비”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민주당 정치인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공개된 그의 세금신고서는 그의 도덕적 언어와 개인적 기부 사이에 큰 간극이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자비는 아름다운 단어 그 이상이다”

1998년 12월, 앨 고어는 민주당 리더십 협의회, 즉 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행사에서 연설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시 조지 W. 부시가 내세우던 “자비로운 보수주의”를 겨냥했습니다. 부시는 보수주의도 차갑고 냉정한 이념이 아니라 약자를 돌보는 따뜻한 정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고어는 이에 맞서 자비를 민주당의 도덕적 언어로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는 “자비는 예쁜 단어 그 이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비는 “모든 훈련 중 가장 높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고어는 자비를 정치의 핵심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비는 말뿐이고, 진정한 자비는 자신들이 대표한다는 암시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고어가 자비를 말하던 시기의 세금신고서를 보면, 그의 개인적 자선 기부는 그 언어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197,729달러 소득, 자선 기부 353달러

1998년 4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앨 고어와 부인 티퍼 고어의 1997년 연방 세금신고서를 보도했습니다. 이 신고서에 따르면 고어 부부의 조정총소득은 197,729달러였습니다. 대부분은 부통령 급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금신고서에 기재한 자선 기부액은 353달러였습니다.

20만 달러에 가까운 소득에서 353달러를 기부한 것입니다. 비율로 계산하면 약 0.18%입니다. 물론 이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도 일정 비율 이상을 반드시 기부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어가 사회적 책임과 자비를 정치적 언어로 자주 사용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숫자는 논란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금액은 같은 소득대의 미국인들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1995년 기준 소득 1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 사이의 미국 가구는 평균 3,377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고어 부부의 소득은 이 구간의 상단에 가까웠지만, 기부액은 평균의 약 10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이 비교가 중요한 이유는 고어가 단순히 평범한 납세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 부통령이었고,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의무를 강조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이 같은 소득대 평균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기부했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 언어와 개인적 실천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습니다.

고어 측의 해명

논란이 커지자 고어 측은 해명했습니다. 고어의 대변인 크리스 리헤인은 세금신고서에 모든 기부가 반영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고어 부부가 교회에 낸 기부금을 공제 항목으로 신고하지 않았고, 티퍼 고어가 노숙자들에게 음식과 옷을 기부한 것도 세금신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한 사람의 타인에 대한 헌신을 판단하려면 돈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삶과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고어 부부는 대단히 헌신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해명에는 일정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자선은 돈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시간, 봉사, 공적 활동, 사회적 영향력도 넓은 의미의 기여일 수 있습니다. 티퍼 고어가 기아와 노숙자 문제 관련 활동에 참여해 왔다는 점도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명은 동시에 더 중요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고어 측은 개인적 기부액이 낮다는 비판에 대해 공직 활동과 공적 헌신을 방어 논리로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돈으로 드러나는 사적 자선보다는 정치 활동과 공적 역할을 자비의 증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핵심입니다. 진보 정치에서 자비는 종종 개인의 직접 기부보다 공직, 정책, 정부 프로그램으로 이해됩니다. 자비는 개인이 자신의 돈을 내놓는 행위라기보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바뀝니다. 즉 그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기부한다는 비평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어의 기부 기록은 해마다 달랐다

공정하게 말하면, 고어 부부가 언제나 353달러만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기부 기록은 해마다 크게 달랐습니다.

1992년에는 52,558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이 가운데 50,000달러는 고어의 책 《Earth in the Balance》 인세를 바탕으로, 사망한 여동생을 기념해 테네시대학교에 기부한 금액이었습니다. 1996년에는 35,530달러를 기부했는데, 대부분은 티퍼 고어의 책 《Picture This》 수익을 노숙자 관련 프로그램에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1997년에는 353달러였습니다.

따라서 고어가 평생 기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고어 부부는 특정한 해에는 상당한 기부를 했지만, 1997년에는 197,729달러의 소득 중 세금신고서상 자선 기부액이 353달러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 낮은 기부액은 그가 사회적 책임과 자비를 강조해 온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 글의 논지가 더 강해집니다. 문제는 고어가 한 번도 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비를 정치적 도덕 언어로 사용한 인물이 정작 그해 자신의 소득에서는 거의 상징적인 수준의 기부만 했다는 점입니다.

자비가 정부 프로그램으로 바뀌는 순간

앨 고어 사례의 핵심은 단순히 “고어가 인색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한 자비의 성격입니다.

고어는 자비를 개인의 자선 기부나 자원봉사로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비를 정치 프로그램, 특히 사회보장과 같은 정부 제도의 문제로 연결했습니다. 클린턴-고어 행정부는 당시 예산 흑자를 사회보장제도 안정화에 우선 사용하겠다는 노선을 강조했습니다. 사회보장은 노후 빈곤을 막고 은퇴자에게 안정적 소득을 제공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사회보장을 강화하자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비”라는 도덕적 언어가 정부 지출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시될 때 발생합니다. 자비가 정부 예산의 배분 문제로만 이해되면, 개인의 직접적 희생은 뒤로 밀려납니다. 정치인은 “우리는 자비롭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시민들이 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말하고 있을 뿐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어 사례가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고어는 자비를 가장 높은 덕목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자신의 세금신고서에 나타난 직접 기부는 353달러였습니다. 반면 그가 말한 자비의 실질적 내용은 사회보장, 정부 프로그램, 공적 예산에 가까웠습니다.

공적 자비와 사적 자선의 차이

여기서 우리는 공적 자비와 사적 자선을 구분해야 합니다.

공적 자비는 정부가 세금을 걷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복지, 사회보장, 공공의료, 주거지원, 교육지원 같은 제도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제도는 필요합니다. 개인 기부만으로 현대 사회의 빈곤과 노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적 자선은 개인이 자신의 돈과 시간과 노동을 직접 내놓는 것입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교회나 지역단체를 지원하고, 직접 봉사활동을 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자기 비용이 따릅니다. 이 비용은 말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정치적 논쟁에서 이 둘은 자주 섞입니다. 진보 정치인은 공적 자비를 강조합니다. 보수 정치인은 사적 자선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화이며 예외는 많습니다. 그러나 고어 사례는 이 차이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고어에게 자비는 주로 정책의 언어였습니다.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반면 그의 개인적 기부 기록은 그 언어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왜 앨 고어 사례가 가장 강한가

쿠오모 사례는 노숙자 정책 경력과 낮은 기부액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고어 사례는 그보다 더 직접적입니다.

고어는 “자비”라는 단어를 직접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비가 예쁜 단어 이상이며, 가장 높은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의 세금신고서에서 그의 자선 기부액은 353달러였습니다. 소득은 197,729달러였습니다. 같은 소득대 미국인 평균 기부액은 3,377달러였습니다. 고어의 기부액은 그 1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고어 측의 해명은 이 논점을 더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어 측은 기부액이 낮다는 비판에 대해 그가 공직과 정치 활동을 통해 타인에게 헌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진보 정치에서 자비가 개인의 직접 기부보다 공직, 정책, 정부 프로그램으로 이해되는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이 네 가지가 결합되기 때문에 고어 사례는 “말로서의 자비”와 “비용을 치르는 자비”의 차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사례가 됩니다.

자비는 말이 아니라 비용으로 검증된다

앨 고어의 353달러 기부금 논란은 단순한 흠집 잡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도덕성을 평가할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정치인은 누구나 자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약자를 돕겠다고 말할 수 있고, 노인을 보호하겠다고 말할 수 있고, 공동체를 더 따뜻하게 만들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만으로 그 사람이 실제로 자비로운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내놓았습니까?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습니까? 자신의 생활에서 실제 비용을 감수했습니까? 아니면 자비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만 말하고 있습니까?

앨 고어 사례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는 자비를 가장 높은 덕목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세금신고서에 나타난 그의 자선 기부는 353달러였습니다. 이 숫자는 정치적 연민과 개인적 희생이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결국 자비는 말로 검증되지 않습니다. 자비는 비용으로 검증됩니다. 정치인의 자비를 평가할 때는 그가 얼마나 따뜻한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따뜻함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희생으로 나타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참고문헌

  1. “Candidates on Parade.” Time, December 1998.

  2. Peterson, Jonathan. “Some Feel Less Than Charitable About Gores’ Giving.” Los Angeles Times, April 15, 1998.

  3. Lindberg, Tod. “Service and the State: Politicizing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 Brookings Institution, September 1, 2002.

  4. The White House. “Saving Social Security.” Clinton White House Archives, 1999.

  5. Brooks, Arthur C. Who Really Cares: The Surprising Truth About Compassionate Conservatism. New York: Basic Book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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