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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와 알렉스 소로스: 열린 사회와 사적 권력 승계의 모순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조지 소로스의 재단 권력이 실은 민주적 통제 없이 가문 내부에서 알렉스 소로스에게 세습되는 모순과 위선을 분석합니다.

열린 사회와 사적 권력의 승계: 소로스 제국의 모순

조지 소로스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열린 사회”입니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금융가가 아니라 열린 사회의 후원자로 설명해 왔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시민사회, 언론 자유, 법치, 소수자 권리, 학문적 자유를 지원하는 인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열린 사회를 말하는 거대한 권력은 왜 한 가문 안에서 승계되는가.

소로스가 만든 Open Society Foundations는 단순한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사회, 대학, 언론, 법률단체, 인권단체, 선거 관련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초대형 민간 네트워크입니다. 조지 소로스는 2017년에 자신의 재산 약 180억 달러를 Open Society Foundations에 이전했고, 이로 인해 이 재단은 세계 최대급 자선재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디언》은 이 이전으로 Open Society Foundations가 게이츠 재단과 웰컴 트러스트에 이어 세계 최대급 재단 반열에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재단은 더 이상 단순한 선의의 기부기관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회의 가치 질서와 제도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사적 권력입니다. 그런데 이 사적 권력은 선거로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이 위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권력은 조지 소로스의 아들 알렉스 소로스에게 넘어갔습니다.

금융시장의 부가 재단 권력으로 바뀌다

소로스의 부는 금융시장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통화, 금리, 국가 정책의 취약성을 읽고 거기에 거액을 걸어 돈을 번 투기자였습니다. 그가 번 돈은 이후 열린 사회, 인권, 민주주의, 시민사회라는 이름을 입었습니다.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돈이 단순히 소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 재산은 재단으로 이전되었고, 재단은 다시 사회적 영향력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금융시장에서 형성된 사적 부가 도덕적 언어를 입고, 시민사회와 정치제도에 장기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불법이상이 아닙니다. 부자가 자신의 돈을 재단에 기부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시민사회와 인권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합법입니다. 문제는 합법 여부가 아닙니다.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권력은 원칙적으로 시민의 동의와 선거를 통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대 자선재단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재단은 남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재단은 남습니다. 여론이 흔들려도 장학금, 연구비, NGO 지원, 법률단체 후원, 언론 프로젝트, 국제 네트워크는 계속됩니다.

이것은 느리지만 강한 권력입니다.

열린 사회라는 이름의 사적 제도

Open Society Foundations는 자신을 열린 사회를 위한 재단으로 설명합니다. 재단은 조지 소로스가 1984년 이후 자신의 금융시장 재산 중 320억 달러 이상을 재단에 기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재단은 이 돈이 인권, 정의,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생깁니다. 인권, 정의, 민주주의라는 말은 매우 강한 도덕 언어입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순간 반대자는 쉽게 방어적 위치에 놓입니다. 누가 인권에 반대하겠습니까. 누가 민주주의에 반대하겠습니까. 누가 정의에 반대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정책을 지원할 것인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어떤 선거제도를 밀 것인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어떤 형사사법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언론 자유라는 이름으로 어떤 매체와 어떤 담론을 후원할 것인가. 학문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어떤 대학 네트워크를 키울 것인가.

이 질문들은 모두 정치적입니다. 즉, 열린 사회라는 말은 중립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가치와 정책 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향을 결정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 권력이 시민에게 있는가. 의회에 있는가. 선출된 정부에 있는가. 아니면 한 억만장자가 만든 재단과 그 후계자에게 있는가.

알렉스 소로스의 등장

2023년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250억 달러 규모 제국의 통제권을 아들 알렉스 소로스에게 넘겼습니다. 로이터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인용해, Open Society Foundations 이사회가 알렉스를 의장으로 선출했고, 알렉스가 소로스의 정치활동을 지휘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알렉스 소로스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가족의 돈을 좌파 성향 미국 정치후보들에게 계속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투표권, 낙태권, 젠더 평등을 재단의 우선순위로 더 넓히겠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중요합니다. 소로스 재단의 승계는 단순한 행정 승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방향성을 가진 사적 권력의 승계입니다. 아버지가 만든 금융·자선·정치 네트워크를 아들이 이어받고, 그 아들은 자신이 더 정치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은 열린 사회인가, 아니면 사적 권력의 세습인가.

돈을 정치에서 빼고 싶지만, 우리도 해야 한다

알렉스 소로스의 발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치자금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는 “정치에서 돈을 빼고 싶지만, 상대편이 하는 한 우리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말은 현대 정치자금의 위선을 압축합니다.

진보 진영은 대체로 돈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합니다. 억만장자가 선거와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왜곡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억만장자가 자기편이면 말이 달라집니다. 보수 성향 억만장자의 정치자금은 민주주의의 위협이지만, 진보 성향 억만장자의 정치자금은 민주주의 수호가 됩니다.

알렉스 소로스의 논리는 솔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입니다. “상대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논리는 원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금력 경쟁의 인정입니다. 보수 진영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 그러면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의 토론장이 아니라, 거대 기부자들의 대리전이 됩니다.

이것이 소로스 문제의 핵심입니다. 소로스 가문은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민주주의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시민 한 사람의 표는 작고 느립니다. 그러나 억만장자의 돈은 빠르고 큽니다. 시민은 후보를 선택하지만, 거대 기부자는 후보가 서기 전의 환경을 바꿉니다. 시민은 선거일에 투표하지만, 재단과 PAC와 NGO 네트워크는 선거 이전의 의제, 인재, 캠페인, 법률투쟁, 여론환경을 형성합니다.

대학 네트워크와 엘리트 재생산

소로스의 권력은 선거자금에만 있지 않습니다. 더 장기적인 영역은 교육입니다.

2020년 조지 소로스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Open Society University Network, 즉 OSUN을 출범시키기 위해 1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Open Society Foundations는 OSUN이 세계 여러 고등교육기관을 연결해 공동 강의, 공동 학위, 국제 토론을 운영하는 네트워크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로스는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프로젝트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학사업이 아닙니다.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고, 엘리트를 길러내고, 미래의 국제기구·NGO·언론·정책기관 인재를 배출합니다. 따라서 대학 네트워크는 장기적 정치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운동은 거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선거운동본부에서만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장학금, 대학원, 국제 공동수업, 인권 프로그램, 법률센터, 시민사회 인턴십, 국제회의, 연구비 지원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한 세대의 인재가 어떤 언어로 세계를 이해하고,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제도를 정의롭다고 배우는지는 정치의 깊은 층을 형성합니다.

소로스가 대학 네트워크에 거액을 투입한 것은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가 말하는 열린 사회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육기관을 통해 재생산되는 가치 체계입니다. 다시 말해 열린 사회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금과 제도와 인재양성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의 방향은 누가 정하는가. 교수인가. 학생인가. 시민인가. 국가인가. 아니면 자금을 제공하는 재단인가.

자선은 면죄부가 아니다

소로스 재단이 지원한 사업 중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독재에 맞선 시민사회 지원, 언론 자유, 소수자 보호, 법률 지원, 장학사업을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좋은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권력의 구조를 지워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선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기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인권이라는 말은 정치적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습니다. 열린 사회라는 이름도 사적 권력의 세습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선한 목적을 말하는 권력일수록 더 엄격하게 보아야 합니다. 노골적인 권력은 권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도덕의 언어를 입은 권력은 자신을 권력으로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바로 그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소로스의 열린 사회는 국가권력은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기업권력도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다수의 편견도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소로스 재단의 권력도 의심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는 열린 사회는 열린 사회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권력

소로스 가문의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현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정치권력은 선거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선거 이전의 의제 설정, 법률투쟁, 시민단체 네트워크, 교육기관, 언론지원, 국제기구, 학술담론,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영역은 모두 민주주의의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사회도 민주주의의 일부입니다. 대학도 민주주의 사회에 필요합니다. 언론 자유와 인권단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특정 가문의 초대형 자금이 장기간 투입될 때, 우리는 그것을 순수한 시민사회라고만 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민사회이면서 동시에 권력입니다. 자선이면서 동시에 정치입니다. 인권운동이면서 동시에 이념 인프라입니다. 열린 사회라는 말이면서 동시에 닫힌 가문 승계 구조입니다.

이 모순이 소로스 논쟁의 핵심입니다.

결론: 열린 사회라는 이름의 가문 권력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에서 부를 만들었습니다. 그 부는 Open Society Foundations로 이전되었습니다. 재단은 세계적인 시민사회·교육·정치 네트워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는 이제 아들 알렉스 소로스에게 승계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합법적입니다. 그러나 합법적이라고 해서 민주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일에 투표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출처를 묻는 제도입니다. 누가 의제를 정하는가. 누가 인재를 키우는가. 누가 법률투쟁을 지원하는가. 누가 언론과 시민단체의 생태계를 만드는가. 누가 정치자금의 흐름을 장악하는가. 그리고 그 권력은 시민 앞에 책임을 지는가.

소로스의 열린 사회는 바로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열린 사회를 말하는 권력이 시민에게 열려 있지 않고, 한 가문 안에서 승계된다면 그것은 열린 사회의 이상과 충돌합니다. 조지 소로스의 문제는 단지 그가 돈이 많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금융시장에서 얻은 부가 도덕적 언어를 입고, 재단 권력으로 제도화되고, 다시 가문 내부에서 승계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열린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사적 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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