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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사회적 양심을 산 투기꾼


기부와 후원자라는 도덕적 이미지 이면에 가려진 조지 소로스의 역외 조세 피난처 활용, 금융 시장의 규제 회피,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진보 진영의 이중 잣대를 분석합니다.

조지 소로스, 사회적 양심을 산 투기꾼

조지 소로스는 현대 진보 진영에서 가장 기묘한 인물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탐욕, 시장근본주의, 부유층의 낮은 세금 부담, 기업 규제의 부족을 비판해 왔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자본주의의 가장 냉혹한 영역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는 시장의 사회적 결과를 따지지 않는 투기자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사회적 양심의 대표자처럼 행세했습니다.

이 점에서 소로스의 문제는 단순히 그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공매도나 환투기 자체가 곧바로 불법이거나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기준의 차이입니다. 그는 자신이 시장에서 돈을 벌 때에는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을 비판할 때에는 사회적 책임, 진보적 과세, 금융 규제, 열린 사회라는 고상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소로스 비판의 핵심입니다. 그는 시장의 승자로 행동했고, 도덕의 심판자로 말했습니다.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는 고백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 공매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영국 파운드가 유럽 환율 메커니즘을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고, 파운드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영국은행을 무너뜨린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사건 자체는 금융사의 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소로스가 이후 자신의 행위를 설명한 방식은 그의 도덕적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1998년 CBS 60 Minutes 인터뷰에서 소로스는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이후 미국 의회기록에도 인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솔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입니다. 소로스는 자신이 돈을 벌 때에는 사회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다른 자본가와 시장 참여자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설교할 위치에 서기 어렵습니다. 시장에서 돈을 벌 때에는 사회적 결과를 외면하고, 정치와 사회를 말할 때에는 사회적 양심을 독점하려 한다면 그것은 일관된 철학이 아니라 편의적 기준입니다.

그가 “내가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책임을 지우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논리는 거의 모든 냉혹한 행위에 붙일 수 있습니다. 내가 팔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팔았을 것이다. 내가 공격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공격했을 것이다. 내가 이용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이용했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행위의 도덕성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위자를 편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투기꾼이 된 뒤 도덕가가 된 사람

소로스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를 바꾸려 한 인물입니다. 그는 열린 사회, 민주주의, 인권, 진보적 제도 개혁을 후원했습니다. 문제는 그 후원의 내용 자체가 아닙니다. 누구든 자신의 돈으로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사용한 도덕적 언어입니다.

소로스는 시장근본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금융시장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본이 국경을 넘어 세금과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습니다. 그는 부유층에 대한 더 높은 세금과 더 진보적인 과세를 지지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부유층 증세를 주장하는 공개서한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금융사업은 바로 그가 비판한 세계의 혜택 위에 있었습니다. 소로스의 대표 펀드인 Quantum Fund는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의 퀴라소에 설립된 역외펀드였습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사례 설명도 소로스가 조세피난처인 퀴라소에 Quantum Fund를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Follow the Money 역시 Quantum Fund가 1960년대 말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에 설립되었고, 그 지역의 유리한 조세 환경을 활용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역외펀드가 곧 불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로스의 경우 문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남에게 요구한 기준과 자신이 활용한 구조의 차이입니다. 그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핵심 금융사업은 세금 부담과 공시 부담을 줄이기 유리한 역외 구조 위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법의 문제가 아니라 위선의 문제입니다.

규제를 말하면서 규제를 피한 사람

소로스는 금융 규제와 국제 금융질서의 문제를 자주 말했습니다. 그는 시장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믿음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통제되지 않을 때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펀드 운영 방식은 오랫동안 일반 대중의 감시와 공시에서 벗어난 헤지펀드 구조였습니다. Quantum Group of Funds는 런던, 뉴욕, 퀴라소, 케이맨 제도 등과 연결된 사적 헤지펀드 그룹으로 설명됩니다.

이 역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헤지펀드는 원래 공모펀드와 다른 규제 체계 안에서 운영됩니다. 그러나 소로스가 금융 규제와 투명성을 말할 때, 그의 말에는 늘 이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그는 규제되지 않은 금융시장의 위험을 말했지만, 자신은 그 규제가 약한 공간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는 시장의 사회적 위험을 경고했지만, 자신이 시장에서 움직일 때에는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정도면 단순한 모순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덕적 권위의 문제입니다. 자신이 이용한 체제를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체제를 이용해 얻은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소로스에게는 그 일관성이 부족했습니다.

세금을 걷는 기관의 건물을 조세피난처 회사가 사다

소로스의 위선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영국의 Mapeley Steps 논란입니다. 2001년 영국의 세무당국인 Inland Revenue와 HM Customs & Excise는 Mapeley와 장기 부동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영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이 계약은 132개 자유보유 부동산 매각과 459개 임차 건물 관리 이전을 포함했으며, 총 591개 건물이 관련되었습니다. 선불금은 2억 2천만 파운드였습니다.

문제는 이 거래의 구조였습니다. 《가디언》은 이 거래에서 건물을 매입한 회사가 버뮤다 기반의 Mapeley Steps Limited였고, 관련 회사가 조지 소로스와 Fortress Investment가 일부 소유한 Mapeley Holdings에 속해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사건의 아이러니는 너무 노골적입니다. 세금을 걷는 영국 정부 기관의 건물을 조세피난처 구조의 회사가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은 다시 영국 정부가 임차했습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과 진보적 과세를 말하던 소로스가 일부 소유한 회사가, 정작 세무당국 건물을 조세피난처 구조로 보유하는 거래에 연결된 것입니다.

이 사건 역시 “소로스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쓰면 오히려 논점이 약해집니다. 더 강한 비판은 이것입니다. 소로스는 세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세법의 빈틈과 국제 금융 구조를 누구보다 능숙하게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동시에 부자와 자본이 그런 빈틈을 이용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같은 기준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진보 진영은 왜 소로스를 비판하지 않게 되었나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소로스에 대한 비판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존재했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98년 「Soros’ Plea」에서 소로스의 글쓰기와 철학적 태도를 조롱하면서도, 그가 제기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문제에는 일정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당시 소로스는 단순한 진보의 성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투기꾼이자 사상가 지망생이었고, 그 조합은 많은 사람에게 불편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소로스는 미국 진보 진영의 거대 후원자로 부상했습니다. 2004년 대선에서 그는 조지 W. 부시를 막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투입했습니다. 《뉴요커》는 당시 소로스가 선거자금 개혁을 지지했던 인물이면서도, 부시를 막기 위해 거액을 쓰는 것을 “비상한 시기”라는 논리로 정당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소로스는 미국 좌파 정치의 상징적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소로스 가문은 민주당과 진보 정치세력에 거액을 지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진보 진영의 침묵이 중요해집니다. 진보 진영은 대체로 억만장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비판합니다. 부자가 돈으로 정치와 여론을 좌우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왜곡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억만장자가 자신들의 편에 서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보수 성향 억만장자의 정치자금은 “민주주의의 위협”이지만, 소로스의 정치자금은 “민주주의 수호”가 됩니다.

이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편 가르기입니다.

소로스의 진짜 문제

소로스를 비판할 때 음모론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공개 자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시장의 가장 냉혹한 영역에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세피난처 구조를 활용했습니다. 그는 규제가 약한 헤지펀드 세계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돈으로 사회적 양심과 진보적 도덕을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위선을 설명합니다.

소로스가 틀렸다는 말은 그가 모든 사회사업을 악의로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지원한 사업 중에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일부 했다는 사실이 기준의 이중성을 지워주지는 않습니다. 자선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정치 후원은 도덕적 세탁이 아닙니다. 막대한 돈으로 평판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돈을 벌어들인 방식과 그가 말한 원칙 사이의 충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로스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의 가장 공격적인 무기를 사용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은 조세피난처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금융 규제와 사회적 책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돈을 벌 때에는 사회적 결과를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조지 소로스의 본질적 모순입니다. 그는 시장에서 승리한 뒤, 그 승리의 돈으로 도덕적 권위를 샀습니다. 그리고 많은 진보 진영은 그가 자신들의 편이라는 이유로 그 모순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소로스는 단순한 투기꾼이 아닙니다. 그는 사회적 양심을 말하는 투기꾼입니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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