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시 펠로시는 단순히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라는 상징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녀의 정치적 본능은 추상적인 진보 이념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 정치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공동체, 가톨릭 문화, 가족주의, 볼티모어 민주당 기계정치가 놓여 있습니다.
이탈리아계 가족주의와 아일랜드계의 차이
펠로시는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낸시 퍼트리샤 달레산드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결혼 전 성인 달레산드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입니다. 그녀가 자란 볼티모어의 리틀 이탈리는 단순한 이민자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족, 성당, 상점, 동네 인맥, 지역 정치가 촘촘하게 얽힌 공동체였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공동체의 특징은 강한 가족주의였습니다. 국가나 제도보다 먼저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 친척, 고향 사람,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남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 늦게 들어왔고, 언어 장벽과 편견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경찰, 소방, 시청 같은 공공 제도 안으로 쉽게 흡수되기보다는 가족과 동네 네트워크를 통해 생존했습니다.
이 점에서 이탈리아계는 아일랜드계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미국 도시에 더 먼저 대규모로 들어왔고, 영어를 사용했으며, 가톨릭 교구와 민주당 조직을 통해 경찰, 소방, 시청, 노조 같은 공공 영역에 비교적 빠르게 진입했습니다. 그들은 도시 제도 안으로 들어가 공공권력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계는 제도 안으로 바로 들어가기보다,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힘을 길렀습니다. 동네 상권, 친족 관계, 지역 보스, 민원 해결자, 선거 동원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일랜드계가 도시 제도권의 문지기가 되었다면, 이탈리아계는 제도 바깥의 공동체 힘을 정치적 동원력으로 전환한 집단에 가까웠습니다.
생활로서의 정치와 볼티모어 기계정치
낸시 펠로시의 집안은 바로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토머스 달레산드로 주니어는 메릴랜드 하원의원을 지낸 뒤 볼티모어 시장을 12년 동안 지냈습니다. 그녀의 오빠 토머스 달레산드로 3세도 훗날 볼티모어 시장이 되었습니다. 펠로시가 자란 집은 평범한 가정이라기보다 지역 정치의 중심지에 가까웠습니다.
그 집에서 정치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는 생활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민원을 갖고 있는지, 어느 동네가 몇 표를 움직일 수 있는지, 누구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주어야 하는지, 어느 집단의 불만을 달래야 하는지, 누가 충성하고 누가 이탈할 수 있는지를 매일 관찰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 민주당 기계정치의 세계였습니다. 기계정치는 이념보다 조직을 중시합니다. 연설보다 표 계산을 중시합니다. 원칙보다 관계를 중시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 누구를 도와주면 선거 때 몇 표가 돌아오는지, 어떤 집단을 챙기지 않으면 어떤 반발이 생기는지를 관리하는 정치입니다.
펠로시의 어머니 안눈치아타 낸시 롬바르디 달레산드로도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정치인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지역 여성 조직과 선거 조직을 챙기는 실질적 정치인이었습니다. 펠로시는 아버지에게서 공식 권력의 언어를 배웠고, 어머니에게서 비공식 네트워크와 사람 관리의 기술을 배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도 안으로 들어온 늑대적 공동체 감각
이탈리아계 가족주의는 펠로시의 정치 감각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가족, 충성, 관계, 의무, 보복, 체면은 이 공동체에서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이것은 추상적 시민윤리와는 조금 다른 세계입니다. 법과 제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는 먼저 가족과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한다는 감각이 강했습니다.
사용자의 표현을 빌리면, 아일랜드계가 제도 안으로 들어간 ‘개’에 가까웠다면, 이탈리아계는 가족과 무리를 지키는 ‘늑대’에 가까운 면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민족적 본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민자 차별, 빈곤, 국가 불신, 도시 생존 경쟁이 만든 적응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가족과 동네를 중심으로 한 강한 결속이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펠로시는 바로 그 늑대적 공동체 감각이 제도권 정치와 결합한 사례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공동체의 가족주의적 에너지를 볼티모어 민주당 정치 안으로 끌어올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펠로시는 제도 바깥의 생존 감각과 제도 안의 권력 기술을 동시에 배웠습니다.
의회를 움직이는 조직가이자 표 계산가
이 배경을 알면 펠로시의 정치 스타일도 더 잘 이해됩니다. 그녀는 단순한 진보주의 이념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조직가, 표 계산가, 권력 관리자에 가깝습니다. 그녀에게 정치는 감상적 도덕주의가 아니라, 누가 움직일 수 있는가, 누가 반대할 것인가, 몇 표를 확보할 수 있는가, 언제 밀어붙여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훗날 펠로시가 하원의장으로서 보여준 강한 표 단속, 내부 규율, 협상력, 반대파 관리 능력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도시 정치의 작동 방식을 몸으로 익힌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술입니다. 그녀는 의회를 추상적인 토론의 장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의회도 결국 사람과 표와 관계와 이해관계가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본 것입니다.
리틀 이탈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펠로시는 대학 졸업 후 폴 펠로시와 결혼했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다섯 자녀를 키웠습니다. 선출직 정치는 비교적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 후원자 조직, 지역 네트워크,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계속 정치적 기반을 넓혔습니다. 그녀가 1987년에 하원의원이 되었을 때는 초선 정치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조직의 내부 논리를 보아 온 사람이었습니다.
진보의 명분과 보스 정치의 방법
낸시 펠로시를 이해하려면 그녀를 단순히 여성 정치인, 진보 정치인, 민주당 지도자로만 보아서는 부족합니다. 그녀의 정치적 뿌리에는 이탈리아계 가톨릭 이민자 공동체의 가족주의가 있고, 볼티모어 리틀 이탈리의 동네 문화가 있으며, 아버지에게서 배운 도시 보스 정치와 어머니에게서 배운 비공식 조직 관리의 기술이 있습니다. 그녀는 현대적 민주주의의 투명한 토론 문화보다, 오래된 도시 정치의 거래와 충성, 동원과 보상, 압박과 규율의 세계에서 정치 감각을 익힌 인물입니다.
그래서 펠로시의 정치는 겉으로는 진보적 가치와 여성 리더십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매우 오래된 정치기계의 논리에 가깝습니다. 명분은 현대적이지만 방법은 구식입니다. 개혁을 말하지만 권력 운용은 냉정한 보스 정치에 가깝습니다. 가족, 충성, 관계, 표, 보상, 응징, 조직 규율. 이것이 낸시 펠로시를 만든 세계이며, 동시에 그녀 정치의 가장 강한 힘이자 가장 큰 한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