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자베스 워런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부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버드 교수가 높은 연봉을 받고, 법률 전문가가 자문료를 받고, 부동산 투자로 이익을 얻고, 가족이 사업을 키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어떤 정치적 언어로 자신을 설명했느냐입니다.
워런은 자신을 중산층의 편에 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대기업과 월스트리트가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평범한 시민을 압박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경제 시스템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가족의 경제적 삶을 보면, 그 조작된 시스템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상당한 부와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워런의 세 번째 모순입니다. 첫 번째 모순은 외부자의 언어를 쓰는 내부자였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모순은 반기업 개혁가의 이미지를 가진 기업 법률 자문가였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 모순은 대기업과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면서도, 가족의 부와 사업은 바로 그 기업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차압 주택과 중산층 서사
워런은 중산층의 불안을 정치적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미국 중산층이 주택, 부채, 교육비, 의료비, 금융 시스템의 압박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강했습니다. 규칙을 지키며 살던 사람들이 점점 더 불안정해졌고, 은행과 기업은 그 불안을 이용해 이익을 얻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워런과 남편은 오클라호마에서 차압 주택을 낮은 가격에 구입한 뒤 되팔아 이익을 얻었습니다. 자료는 1993년 6월 HUD로부터 압류된 주택을 61,000달러에 구입한 뒤 18개월 만에 56% 이익을 내고 팔았고, 같은 해 8월에는 30,000달러에 산 주택을 5개월 뒤 145,000달러에 팔아 383%의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합니다. 15년 동안 오클라호마 부동산 기록상 워런이 직접 구입하거나 가족에게 재정 지원한 부동산 거래 규모는 12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거래가 불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차압 주택을 사서 수리하거나 되파는 일은 시장경제 안에서 가능한 투자입니다. 문제는 워런이 나중에 어떤 도덕적 위치에서 경제를 비판했느냐입니다. 차압 주택은 누군가가 금융 위기나 개인적 불운으로 집을 잃은 뒤 시장에 나온 자산입니다. 투자자는 그 낮아진 가격에서 기회를 찾습니다. 이것은 합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재정적 불행을 전제로 한 이익이기도 합니다.
워런은 나중에 중산층이 부동산과 금융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불안정해지는지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은 바로 그런 불안정한 시장에서 수익을 얻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투자 자체가 아니라 자기서사입니다. 자신이 시장의 기회를 이용할 때는 합리적 투자이고, 다른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익을 얻을 때는 조작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택적 도덕주의가 됩니다.
투자 포트폴리오와 반기업 정치
워런은 월스트리트와 대기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금융기관, 대형 은행, 의료 산업, 기업 로비, 부유층의 영향력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그 정치적 언어와 어긋났습니다.
자료는 2008년 워런 부부가 TIAA-CREF 퇴직기금을 통해 1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주식을 보유했고, Vanguard 500 인덱스 펀드에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를 보유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사회적 책임 투자 펀드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남편은 오클라호마의 가스정에도 투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투자가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평범하고 합리적인 금융 행위입니다. 대형 기업 주식을 보유하는 것도 불법이나 부도덕의 증거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적 언어와 사적 경제생활 사이의 간격은 분명합니다.
워런은 대기업이 미국 경제를 왜곡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자산은 바로 그 대기업들의 주식시장 성과에 의존했습니다. 월스트리트와 대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면 포트폴리오도 좋아지는 구조였습니다. 다시 말해, 공개적으로는 대기업의 힘을 비판하면서 사적으로는 대기업의 성장을 통해 자산을 늘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모순은 현대 진보 엘리트에게서 자주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과잉을 비판하지만, 자신의 연금과 자산은 주식시장에 묶여 있습니다. 대기업의 탐욕을 비판하지만, 대기업의 주가 상승은 자신의 노후를 안정시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비난할 일이라기보다, 진보 엘리트의 구조적 위치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비판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하버드의 고임금 교수와 노동자 문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하버드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버드 법학대학원은 재정 압박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고임금 교수들의 보수를 줄일 것인지, 저임금 직원들을 해고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료는 당시 교수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급여를 줄이자는 청원이 돌았지만, 워런의 2009년 세금 신고서상 그녀의 보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올랐다고 설명합니다. 당시 워런의 보수는 349,375달러였습니다.
이 대목도 워런의 정치적 이미지와 충돌합니다. 그녀는 중산층과 노동자를 위한 개혁가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저임금 직원들의 일자리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급여를 줄이는 방식의 연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물론 한 교수의 급여 삭감 여부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정치적 신념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도덕적 언어는 가까운 곳에서 먼저 시험받습니다. 멀리 있는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자신이 속한 하버드에서 저임금 직원과 고임금 교수의 이해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더 불편한 질문입니다.
정치적 도덕성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생활의 구체적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워런이 말한 중산층 보호와 노동자 보호의 언어는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고임금 교수 생활과 하버드 내부의 위기 앞에서는 그 언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작동했는지 질문이 남습니다.
딸 아멜리아와 BTG
워런의 가족 이해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딸 아멜리아의 회사 BTG입니다. 아멜리아는 Business Talent Group, 즉 BTG를 공동 창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전문 인력을 임시 프로젝트에 연결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고급 전문직을 위한 긱 경제 플랫폼에 가까운 모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워런이 긱 경제와 불안정 노동을 비판해왔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노동자가 안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업이 유연한 고용을 이용해 책임을 줄이는 문제를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회사는 독립 전문인력을 기업 프로젝트에 연결하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료는 BTG가 2009년에 200명의 인재 풀과 400만 달러 수익을 가지고 있었고, 2012년에는 네트워크에 1,800명의 독립 전문인을 포함시키며 수익을 1,100만 달러까지 늘렸다고 설명합니다.
이것도 사업 자체가 불법이거나 부도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문 인력을 기업 프로젝트에 연결하는 모델은 시장에서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런의 정치적 언어와 가족 사업의 방향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이 있습니다. 공개적으로는 긱 경제의 불안정성을 비판하면서, 가족의 사업은 고급 전문직 긱 경제 모델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워런과 딸이 가까웠다는 점도 자료에서 강조됩니다. 워런은 회고록에서 딸과의 긴밀한 관계를 언급했고, 딸과 함께 책도 썼습니다. 지지자들도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오랜 공범”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BTG 문제는 단순히 “딸이 따로 한 사업”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공직자의 가족 사업은 언제나 이해충돌의 질문을 낳습니다. 특히 공직자가 대기업, 금융기관, 정부기관, 노동시장 규제와 관련된 정책을 다루고 있고, 가족 회사가 바로 그런 기업과 기관을 고객으로 삼는다면 더 그렇습니다.
TARP 감독위원회와 월스트리트 네트워크
워런의 경력 전환점은 TARP 감독위원회였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의회는 금융기관 구제금융을 감시하기 위한 감독위원회를 만들었고, 워런은 그 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와 재무부를 강하게 비판했고, 대형 금융기관에 책임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시기 워런은 새로운 진보 개혁가로 부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딸 아멜리아의 BTG도 금융권과 기업 네트워크를 넓혀갔습니다. 자료는 BTG의 웹사이트에 모건스탠리, JP모건 체이스, 칼라일 그룹, 마스터카드와 관련된 고위 인사들이 자문역으로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워런이 월스트리트 금융권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을 때, 딸의 회사는 월스트리트와 대기업 출신 인사들을 네트워크에 추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바로 부정행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적 권한과 가족 사업의 방향이 같은 권력 영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워런은 금융기관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었고, 동시에 그 금융권과 연결된 고위 인사들은 딸의 사업 네트워크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은 직접 돈을 받았는지 여부만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접근권, 평판, 네트워크, 신뢰, 소개 가능성도 자산입니다. 워런이라는 이름은 딸의 회사에 직접 계약을 보장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런의 부상과 월스트리트 접근권은 가족 주변의 네트워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금융보호국과 CEO들의 전화번호
워런은 이후 소비자금융보호국 설립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관은 은행, 채권 추심업체, 브로커리지 회사, 신용조합, 급여 대출업체, 학생대출 서비스업체 등을 감독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워런은 공개적으로 금융기관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사적으로는 월스트리트 CEO들과 직접 접촉하려 했습니다. 자료는 그녀의 첫 임무 가운데 하나가 월스트리트 CEO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모으는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은 워런 정치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공개적으로는 외부자의 분노를 말합니다. 사적으로는 내부자의 접근권을 확보합니다. 대중에게는 월스트리트에 맞서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정책 과정에서는 월스트리트의 최고위층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책을 만들려면 업계 관계자와 접촉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기서사입니다. 워런은 월스트리트 바깥의 사람이 아니라 월스트리트 내부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권력자였습니다. 그녀는 외부자의 언어와 내부자의 접근권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이중성은 워런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중은 그녀를 자신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보았고, 권력자들은 그녀를 무시할 수 없는 내부자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이중성은 동시에 이해충돌의 위험도 키웠습니다. 공적 감시자의 가족이 같은 권력권역에서 사업 기회를 넓힌다면, 공정성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습니다.
NIH 자금과 BTG 계약
자료는 워런 상원의원의 정책 활동과 딸 아멜리아의 BTG 고객이 겹친 사례로 NIH 관련 내용을 제시합니다. 워런은 2014년에 국립보건원, 즉 NIH를 위한 추가 자금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2015년 BTG는 NIH 재단과 808,000달러 계약을 체결했고, 그 다음 해에는 467,000달러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부정한 거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NIH 재단이 정상적인 절차로 계약했을 수도 있고, 워런의 정책 활동과 BTG 계약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충돌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겹침에서 시작됩니다. 상원의원이 특정 공공기관의 자금 확대를 지지하고, 그 가족의 회사가 그 기관 관련 재단과 계약을 맺는다면, 대중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정책은 공익을 위한 것입니까. 가족 사업에도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까. 두 가지가 우연히 겹친 것입니까. 아니면 구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까.
공직자는 단순히 불법을 피하는 수준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공정성의 외관도 중요합니다. 특히 워런처럼 대기업과 로비, 이해관계의 부패를 비판해온 정치인이라면 기준은 더 높아야 합니다. 자신이 비판한 세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족 사업이 공공기관과 기업 고객을 확보한다면, 그 정치적 언어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기기 산업과 선택적 태도
자료는 워런이 의료기기 산업에도 일관되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의료기기 세금 폐지를 추진했는데, 이는 BTG의 여러 의료기기 제조업체 고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핵심은 직접적인 불법이 아닙니다. 의료기기 세금 폐지는 정책적으로 찬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료기기 산업이 혁신을 유지하려면 과도한 세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반대로 대기업 의료기기 회사들에게 유리한 감세라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워런의 정치적 기준입니다. 그녀는 대기업이 정치권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든다고 비판해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특정 산업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그 산업이 가족 회사의 고객군과 겹친다면, 같은 질문이 돌아옵니다. 대기업의 로비는 나쁜 것이고, 자신이 지지하는 산업정책은 공익입니까. 그 기준은 어디에서 나뉩니까.
선택적 반기업주의는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모든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좋은 기업은 비판하고, 자신과 가까운 이해관계가 있는 산업은 정책적 예외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반기업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노조와 가족 네트워크
워런은 노동조합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자료는 AFL-CIO의 리처드 트럼카와 워런의 관계를 언급하며, 같은 시기 트럼카의 노조가 아멜리아의 조직 데모스에 기부금을 제공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역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노조가 진보 성향 단체나 연구기관에 기부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워런의 정치적 영향력과 가족·주변 조직의 재정적 연결이 겹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 정치에서 노조는 도덕적 파트너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로비는 부패이고, 노조의 정치자금은 노동자의 목소리라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권력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이해관계 집단입니다. 기업도 자기 이익을 위해 정치에 접근하고, 노조도 자기 이익을 위해 정치에 접근합니다. 문제는 어느 쪽이 선하냐가 아니라, 정치인이 그 이해관계와 어떤 거리를 유지하느냐입니다.
워런의 사례는 진보 정치가 기업 이해관계에는 예민하면서도, 자신과 가까운 진보적 이해관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카지노 법안과 원칙의 전환
자료의 마지막 부분에는 매슈피 완파노아그 부족 카지노 법안이 등장합니다. 워런은 이 부족의 카지노 개설을 지원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반대해온 도박 합법화에 대한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설명됩니다. 또 이 법안에는 대형 도박 회사 겐팅이 관련되어 있었고, 겐팅은 클리어리 고틀리브가 대표하는 말레이시아 도박 회사였다고 합니다.
이 사례는 워런의 원주민 정체성 논란과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원주민 문제, 카지노, 대형 도박회사, 대형 로펌, 정치적 입장 변화가 한 지점에 모입니다. 물론 부족의 권리와 카지노 문제는 복잡합니다. 원주민 부족의 자치권과 경제개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반대로 도박 산업의 확장을 우려하는 입장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워런이 이전의 도박 반대 입장을 바꾸었다면, 그 변화는 설명되어야 합니다. 왜 이 경우에는 달랐는가. 원칙이 바뀐 것인가. 부족 자치권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우선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이해관계와 네트워크가 작동한 것인가.
선택적 반기업주의는 이런 사례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도박 산업도 대기업입니다. 카지노 사업은 결코 순수한 약자 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주민 권리의 언어와 결합하면 진보 정치 안에서 다른 의미를 얻습니다. 대형 도박회사가 관련되어 있어도, 그 사업은 약자의 경제적 권리처럼 포장될 수 있습니다.
선택적 반기업주의의 구조
워런의 가족 이해관계와 경제활동을 하나로 묶으면 일정한 구조가 보입니다. 차압 주택 거래에서는 시장의 기회를 활용했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는 대기업과 주식시장의 성과에 의존했습니다. 딸의 BTG는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고객으로 성장했습니다. NIH, 의료기기 산업, 노조, 카지노 법안에서는 워런의 정책 활동과 가족·주변 이해관계가 겹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불법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쓰면 글이 약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더 섬세한 문제입니다. 워런은 자신이 비판한 체계 안에서 살았고, 그 체계의 기회를 이용했으며, 가족도 그 체계와 연결된 사업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공개 정치에서는 자신을 그 체계와 싸우는 외부자처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선택적 반기업주의입니다. 반기업주의가 원칙이라면 자신과 가족에게 불리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택적 반기업주의는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할 때만 대기업을 비판합니다. 자신과 가까운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그것은 정책, 혁신, 공공성, 권리, 전문성의 언어로 바뀝니다.
조작된 시스템의 수혜자
워런은 미국 경제가 조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금융 시스템, 조세 제도, 로비, 규제, 파산법, 기업 법률 구조는 강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워런의 문제는 그 조작된 시스템을 비판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녀와 가족이 그 시스템의 수혜자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파산법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고, 대기업 법률 자문으로 돈을 벌었으며, 하버드 교수로 높은 연봉을 받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해 대기업 성장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가족 사업은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상대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조작된 시스템의 바깥에 선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성공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더 정직한 서사는 이랬어야 합니다.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압니다. 나는 내부자로서 이 구조를 고치고 싶습니다.” 이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내부자 개혁론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워런은 자신을 외부자처럼 제시했습니다. 월스트리트와 대기업에 맞서는 순수한 개혁가로 말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의 서사는 약해집니다. 성공이 문제가 아니라 연출이 문제입니다.
진보 엘리트의 자기면책
워런의 사례는 현대 진보 엘리트의 자기면책 구조를 보여줍니다. 진보 엘리트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종종 도덕적 목적 아래 숨깁니다. 자신은 돈을 벌었지만 좋은 정책을 지지하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대기업 주식에 투자하지만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기업과 정부기관을 상대로 사업을 해도, 자신은 공익을 위해 일하므로 이해충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력은 의도만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좋은 목적을 가진 사람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반기업을 말하는 사람도 자기 가족의 사업이 기업 고객에 의존하면 이해충돌의 위험을 가집니다. 노동자를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자산이 주식시장에 묶여 있으면 대기업 성장의 수혜자입니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진보 정치는 도덕적 언어로 자신을 면책하는 정치가 됩니다. 보수나 기업의 이해관계는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는 공익이라는 말로 덮습니다. 워런의 사례는 바로 그 자기면책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결론: 법이 아니라 서사의 문제
엘리자베스 워런의 가족 이해관계 논란은 단순한 법적 비리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서사의 문제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말했는가. 그리고 실제 삶은 그 이야기와 얼마나 일치했는가.
부동산 거래는 불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대기업 주식 투자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딸의 사업도 정상적인 기업 활동일 수 있습니다. NIH 재단 계약이나 의료기기 정책도 각각의 정책적 설명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겹치면, 워런의 반기업 개혁가 이미지는 약해집니다.
그녀는 대기업과 월스트리트가 조작한 시스템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가족은 그 시스템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스템의 기회, 자산, 네트워크, 고객, 정책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외부자, 중산층의 대변자, 순수한 개혁가로 제시했습니다.
정치인의 위선은 부자가 되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가족이 사업을 했다는 데도 있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누린 시스템을 감추고, 자신을 그 시스템의 피해자나 외부자처럼 말하는 데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선택적 반기업주의는 대기업을 미워하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을 필요할 때는 비판하고, 필요할 때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모순을 정의와 개혁의 언어로 덮는 것입니다.
워런은 조작된 시스템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가족은 그 시스템의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 안에서 부와 권력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문제는 반기업주의가 너무 강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반기업주의가 너무 선택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